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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5. 2024

아침, 가을비

사백 서른두 번째 글: 또 비가 옵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부터 또 비가 오고 있습니다. 보아 하니 어제 밤새 내린 모양이었습니다. 요즘 날씨 같으면 이틀을 연달아 비가 오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냥 가을비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놈의 가을비가 이리도 자주 오나 싶습니다.


글쎄요, 43년째 삼성 라이온즈의 열혈팬인 저로선 사실 어제 내린 비가 참 야속했습니다. 플레이오프 1차전의 대승의 여세를 몰아 2차전도 이길 승산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2차전은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두 팀 다 뜻하지 않게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데, 과연 이 비가 어느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지난 2001년에도 삼성 라이온즈는 비와 관련하여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때는 플레이오프가 아니라 한국시리즈였습니다. 이번처럼 삼성 라이온즈가 1차전에서 승리한 뒤에 비가 와 2차전이 순연되었는데, 그때 두산 베어즈가 이기면서 그해 한국시리즈를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비가, 그로 인해 얻어진 휴식이 두산 베어즈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입니다.


어제 비를 지켜보면서 내내 마음을 졸였습니다. 설마 했지만 끝내 경기는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특정 구단의 오랜 팬으로서 부디 이번의 비는 제가 응원하는 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찔끔찔끔 오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하면 오늘은 경기가 열릴 듯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반강제적이긴 하지만, 프로야구 경기들 중에선 가장 큰 경기 중의 하나인 플레이오프 전도 쉬어가는 걸 보면서 때로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기만 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라는 겁니다. 무얼 하든 무리해서 좋을 일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오늘 하루 제 마음대로 쉴 수는 없습니다. 기차에 올라 창밖을 내다봅니다. 눈에 들어오는 풍광들이 아직 완연한 가을은 아님을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도 얼마 안 가 온 세상을 물감으로 흩뿌려 놓은 듯 울긋불긋하게 변하겠지요. 벌써 제 마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낙엽을 즈려 밟아봅니다.


비가 와 그런지 천지가 깨끗이 씻겨 나간 듯한 기분입니다. 상쾌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이런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도 설치고 알게 모르게 피로는 쌓여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의 시작을 이 가을비와 함께 열어가려 합니다.


"딱 오늘 낮까지 만이다!"

하늘을 보며 주문 아닌 주문을 외웠습니다. 더 이상의 비는 곤란하다고 말해 놓았습니다. 오후부터는 맑게 개어 내일은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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