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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2. 2024

나눔의 기쁨

사백 서른일곱 번째 글: 아나바다 장터

3학년 도덕 수업을 하다 보면 시간과 물건을 아껴 쓰는 방법에 대한 공부를 하는 단원이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생활 속에서 아껴 쓰기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교과서에 제시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나바다 장터'입니다. 말 그대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행위의 첫 글자를 따 지은 이름이 '아나바다'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아나바다 장터'는 직접 해 보는 게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기에 아이들에게 충분히 사전 설명을 한 뒤에 표결에 부쳤습니다.


거의 만장일치로 가결이 되어 2주간의 준비 기간을 둔 뒤 드디어 오늘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준비한 물건을 책상 위에 늘어놓고 보기 좋게 배열했습니다. 오늘은 물건의 개수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저희 반 안에서만 하기로 했습니다. 물건을 배열한 아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적당한 가격을 매겨 포스트잇으로 표시했습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가격이 더 나가는 물건이나 구매자들이 선호할 만한 물건은 앞쪽에 배치하는 센스까지 보여주더군요.


그래 봤자 초등학교 3학년 애들이 얼마나 잘하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 아닌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참여하는 데에는 지루한 수업 대신 직접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오늘 꽤 바빴을 겁니다. 자기가 준비한 물건도 팔아야 하고,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까지 사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생각보다도 물건이 안 팔릴 때에는 호객 행위까지 할 줄 알더군요. 나중에 장터를 마감한 뒤에는 무료로 친구들에게 나눔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아나바다 장터'를 하기로 결정한 게 참 잘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내친김에 저도 몇 가지 물건을 샀습니다.

위의 두 가지는 컵 받침대라고 했습니다. 두께가 제법 있어서 쓸 만해 보였습니다. 가운데 줄은 책갈피로 쓰면 딱인 물건이었습니다. 원고지 형태의 틀 속에 적힌 글도 마음에 들었고요. 마지막 줄의 사진 세 장은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아이브의 장원영과 안유진의 사진입니다. 모두 해서 1,000원 주고 샀습니다. 파는 사람도 즐거웠고, 이렇게 양질의 물건을 싼 가격에 사게 된 저 역시 대만족이었습니다.


이제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인데도 담임인 제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의젓하고 제법 꼼꼼하게 하는 걸 보면서 시대가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열 살인 때의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때의 초등학교 3학년은 그냥 완벽한 어린아이에 가까웠던 듯합니다. 갓 아기 티를 벗을까 말까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실제로 당시에는 저희 반에서도 대소변 실례를 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그에 비하면 지금의 초등학교 3학년은 실질적으로 저희 때의 6학년 정도에 버금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아나바타 장터의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학습목표에 도달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학교에 가져와 다른 친구들에게 팔고, 그 돈을 모아 KBS 대구방송국에 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부하자는 데에 뜻을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장을 마감하고 돈을 모두 모아 보니 40,950원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다시 회의했습니다. 다음 달쯤 다른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번 더 '아나바다 장터'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80%의 아이들이 찬성한 결과 일단은 다음 달 중순 경에 동학년의 다른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번 더 하기로 결정하고 오늘의 장을 마감했습니다.


확실히 직접 해 보는 것 이상의 교육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걸 보면서 만약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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