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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7. 2024

당신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글을 쓰려 해?

275일 차.

어제 저녁엔가 노트북 앞에 앉아 이것저것 끼적이고 있었더니 아내가 대뜸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글을 쓰려 해?"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터에 공격이 들어오면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평소에도 늘 생각하고 있던 터라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글쎄요, 어제 저녁에 갑자기 훅 들어온 아내의 질문에는 뾰족이 할 말이 없었습니다.


최소한 질문을 던진 상대방에게 납득을 시켜야 한다는 과제는 남지만, 그전에 해답을 품고 있는 제 자신이 먼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야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제게 먼저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넌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글을 쓰려고 하지?'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 물어도 자신 있게 대답했던 그 당찬 태도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 것처럼, 제가 제게 물었던 질문에서도 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기성 작가였다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뻔히 정해져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글을 쓰는 것이라고 대답했을 겁니다. 하다못해 명색이 작가이니 글을 써야 한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작가가 아닙니다.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요? 왜 그렇게 뻔하고 쉬운 질문 하나에도 대답을 할 수 없었을까요?


사실 따지고 보면 ‘기를 쓰고 글을 쓰고 있다’라는 그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그 많은 여가 활동 중에 저는 글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글을 쓴다며 만날 골방에 틀어박혀 끙끙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책을 출간한다거나 혹은 공모전에 원고를 낸다는 말도 없으니 말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아내의 입장에선 ‘저렇게 글을 써서 도대체 뭐 하려고 저러지?’하는 의문을 가질 법한 것입니다.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게 가장 합리적인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꽤 오래전에 아내가 저에게 왜 자신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결혼 전이라서 저나 아내나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아내가 던진 질문이, 또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이 앞으로의 우리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정확히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은 안 납니다. 다만 분명 그때에도 그냥 당신이라서 좋아한다고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대답이 되었던 것인지 어쨌건 간에 아내와 저는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사랑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저는 ‘그냥 좋으니까’라는 말만 되풀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많은 다른 여가 활동 중에서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고 성취감을 느낍니다. 아무런 결과물을 얻지 못해도 저는 글을 쓰며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 성취감은 제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저로선 글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도 납득시키지 못하는 저의 글쓰기에 대해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누구에게 묻는 게 아니라 바로 제가 저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글을 쓰려고 해?’

이번만큼은 그 어떤 대답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이 순간에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이 글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늘 그랬듯 저는 또 다른 글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게 수필이 되었든 혹은 소설이나 시가 되었든 간에 말입니다. 기를 써가며 글을 쓰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여전히 제겐 '왜'라는 의문은 남지만, 당분간은 그 의문을 미뤄둘까 합니다. 적어도 지금의 제겐 한 편의 글이라도 더 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왜냐고요? 그에 대한 대답 역시 일단 지금은 뒤로 미뤄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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