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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8. 2024

두꺼운 옷

276일 차.

오늘 드디어 두꺼운 옷을 꺼내어 입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많이 쌀쌀해졌어도 이렇게 두께가 있는 옷을 입은 건 처음입니다. 요 근래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다녔었는데, 약간 춥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은 다른 날보다는 조금은 더 따뜻하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입니다.


원래 뭘 하든 제가 남의 눈치나 보는 그런 유형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 힐끔힐끔 보게 됩니다.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앞에 서 있는 한 여자분이 반팔 패딩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매일 아침마다 같은 시각에 지하철 승강장에서 만나는 분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지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실 없이 인사를 건네려다 참습니다. 주말 동안 그녀를 못 봤고 오늘 아침에 봤으니, 어쩌면 반갑다는 것도 영 틀린 말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렇게 매일 아침 지하철이나 기차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하고 말입니다. 아마도 족히 서른 명은 되지 싶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만나는 이들이 있네요.


사십 명 남짓,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사를 나누는 분이 한 분 있습니다. 아침에 버스에서 만나는 분인데 나이는 저보다 열다섯 살 정도 많은 여자분입니다. 눈치를 보니 학교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서 청소하는 사람인 듯했습니다. 그분과는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 가벼운 대화까지 하기도 합니다.


모르던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는다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이 어렵지 막상 시작해 보니 아무 일도 아닌 정도입니다. 다만 요즘 세상에 안면이 있다고 덜컥 말을 건네는 건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닐 듯합니다. 아무래도 상대방에게 경계심을 갖게 할 테니까요.


패딩 조끼를 입은 그녀의 뒤를 따라 지하철에 오르니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어 마음을 놓았습니다. 계절감도 모르고 옷을 입고 다니는 촌스러운 사람이 되기는 싫으니까요. 그나저나 두께가 있는 옷이라서 그런 걸까요? 밖에 돌아다닐 때에는 몰랐는데 실내에 머무니 약간 덥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에는 옷을 입는다는 게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니 제 마음이 이리도 간사하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히 입었나, 너무 빨리 꺼낸 게 아닌가 했는데, 막상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와 보고는 잘 입었다며 미소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깃털 하나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을 가진 저였던 겁니다.


뭐, 낮에 더워져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꺼내어 입은 옷입니다. 그런 걱정은 때가 되었을 때 하면 됩니다. 한 주간의 첫 날인 월요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가볍게 시작하는 만큼 오늘 하루도 무겁지 않은 하루가 되길 바라봅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다 보내고 난 저녁에, 오늘을 그래도 잘 보냈다며 가벼운 미소로 마무리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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