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의 정석
사백 서른아홉 번째 글: 건강한 토론
어젯밤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봤습니다. 아니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본 게 아니라 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원래 잘 때 동영상 강의 같은 걸 틀어놓고 자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이 잘 안 올 때 듣다 보면 스르르 잠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종종 애청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용이 너무 들을 만하다고 판단이 되는 경우, 잠을 설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들은 영상이 딱 그랬습니다. 어찌나 유익하고 재미가 있던지 자야 할 밤인데도 불구하고, 50분짜리 영상을 두 편이나 연달아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려 시각이 2시를 넘어서 버렸습니다.
어제 제가 들은 영상은 바로 노무현 재단 이사장인 유시민 씨와 대구광역시장 홍준표 씨의 토론 영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조합이 잘 맞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잘 맞을 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국민의 힘 소속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현재는 정치를 하고 있지 않지만 진영으로 보자면 더불어민주당을 대변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왜 제 이목을 끌었을까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색이 토론이라면 저들처럼 저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말이 쉬워 토론이지 사실상 진영의 양극단을 대변하는 그 두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토론의 정석을 재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먼저, 홍준표 씨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토론에 참여하는 자세가 무척 돋보였습니다. 가끔 토론 상대자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면서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잃지 않는 여유나 가끔씩 던지는 유머러스한 발언은 청중들을 즐겁게 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발언에서 느껴지는 그의 양심적인 혹은 진정성 있는 태도는 진영을 떠나 지극히 모범이 될 만했습니다.
반면에 냉정하고 지적인 유시민 씨는 어떤 주제나 질문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다분히 편파적인 혹은 정파지향적인 모습이 있긴 하나 논조를 펴감에 있어서는 그 어떤 이들보다 토론에 참여하는 자세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진지하게 듣고 하나하나 이를 반박해 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5살이 더 많은 홍준표 씨의 아슬아슬한 도발에도 굴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지역 선후배 관계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모습은 토론 상대자를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이 엿보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단점이 없지 않았으나, 장점이 훨씬 더 크게 부각되는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지 상대방을 이겨먹고 말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할 말을 다하면서 서로에 대한 예절을 지킬 줄 아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많은 걸 생각나게 했습니다. 저는 단연코 그런 식으로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거든요.
자야 되는데, 자야 되는데, 하면서도 두 시간을 꼬박 경청하고 세 번째 토론 영상을 듣던 도중에 이러다간 날밤을 새우겠다 싶어서 일단은 영상을 멈추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때가 새벽 세 시였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 아침부터 몹시 피곤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언제 한 번 날을 잡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어보며 토론의 정석에 대한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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