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가을
사백 마흔 번째 글: 가을은 어디로 갔을까요?
어젯밤에 잠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늘 그랬듯 마지막 행선지는 집 앞에 있는 편의점입니다. 동네에 있는 꽤 많은 편의점 중에 저는 대체로 그곳만 갑니다. 원래 성격 자체가 숫기가 없는 편이라 새로운 곳은 잘 안 가는 편이거든요.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사들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말을 꺼냅니다.
"날씨가 꽤 많이 쌀쌀해졌죠."
"네, 그렇네요. 이제 반바지 입고 나오기가 좀 그럴 정도네요."
"더울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이러니, 가을이 사라진 것 같아요."
주인과는 안면이 있어서 가끔씩 이렇게 한담을 주고받곤 하는데,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10월 말인데 말입니다. 이건 시간이 빨리 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이런 것도 일종의 이상기후 현상 탓일까요?
이젠 어느새 우리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더는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가 아닌 것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각각 세 달씩이라는 건 벽에 걸린 달력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기껏 해 봤자 제 어린 기억에 있는 정도일 테고요.
그래서 요즘은 아마도 이렇게 구분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봄 1개월, 여름 5개월, 가을 1개월, 그리고 겨울 5개월 등으로 말입니다. 막상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봄과 가을이 지나칠 만큼 짧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가을의 초입이나 완연한 가을이라는 말 따위도 더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인가,라는 말이 가장 정확할 듯합니다.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럴 시간이 안 되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제가 사는 곳이 관광지가 아닌 도심 한복판이기 때문일까요? 예전처럼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나뭇잎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학창 시절엔 꽤 쓸 만한 낙엽이 많아 주워다 코팅해서 책갈피로 쓰곤 했는데, 지금 길바닥에 굴러 다니는 나뭇잎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을 정도입니다.
작년엔가 갔던 양산 통도사의 정경이 문득 눈에 그려집니다. 터미널에 내린 후 버스로 갈아탑니다. 아마 15분쯤 달렸던 것 같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풍광들이 신세계 같았습니다. 길게 뻗은 길을 따라가는 동안 예쁘고 아기자기한 나뭇잎들이 어찌나 많던지, 가을은 사찰에만 머무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도심에서 가을이 사라지려 합니다. 계절이야 어떻게 되었든 우리는 끝내 적응하고 말겠지만, 눈에 비치는 모습이 죄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짧기만 한 이 가을이 영 모양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 자연은 사계절을 뚜렷하게 나눠 놓았습니다. 그걸 억지로 자르고 잘라 여름과 겨울에 가져다 붙인 건 우리의 소행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쉬운 마음이, 또 안타까운 마음이 커져 갑니다. 그 완연하고 선선했던 가을을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선 스쳐 지나가는 가을의 소맷자락이라도 잡고 싶지만, 문득 잡고 보니 겨울일까 봐 손조차 내밀 수 없을 듯합니다.
내친김에 이번 주말은 통도사라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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