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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6. 2023

멀티(?) 소설 쓰기

네 번째 글: 나에게 소설을 쓴다는 건......

그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죽기 전에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보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솔직히 상금이 탐이 나는 것도 아니고, 작가라는 그 타이틀 자체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쓴 소설이 정식 관문을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뭐랄까요, 작품성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터무니없는 욕심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게다가 제 글은, 그리고 제 글이 가진 한계는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기에 어지간해서는 제가 등단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이기도 합니다.


제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실 소설 쓰기라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도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엉뚱한 데에 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소설이 쓰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책으로 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가에 등단할 것도 아니면서 소설을 쓰면 뭣 하냐?"

제 아내와 친구가 종종 제게 하는 말입니다. 아무런 비전도 없으면서 왜 그러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왜 그처럼 비생산적인 일에 매달리냐는 것이지요. 그럴 시간에 조금 더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떠냐는 아내의 말에 틀린 데가 없는 셈이지요. 주변 사람들이 제게 조심스럽게 이제는 웬만하면 소설을 그만 쓰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오는 것도 어쩌면 다 저를 생각해서 말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소설이 너무 쓰고 싶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저에게, '네가 쓴 글은 소설도 그 무엇도 아니다.' 혹은 '그런 엉성한 소설을 누가 읽어주겠느냐?'는 말을 한다-실제로 그런 말도 종종 듣곤 합니다-고 해도 저는 소설 쓰기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 입성한 2023년 6월 9일 이후로, 적지 않은 소설을 써왔습니다. 오늘 문득 그동안 쓴 소설(죄다 브런치북으로 발행해 놓은 상태입니다. 일단은 소설 원본의 보관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이 몇 편이나 되는지 세어봤습니다.


단편소설집 I: 단편 3편

단편소설집 II: 단편 3편

단편소설집 III: 단편 2편

단편소설집 IV: 단편 2편

중편소설집 I: 중편 1편

중편소설집 II: 중편 1편


대략 두 달이 덜 되는 기간 동안 단편 10편과 중편 2편, 총 12편의 소설을 썼습니다. 물론 지금도 중편 1편과 단편 1편을 동시에 써 나가고 있고요. 사실 이 이야기는 또 이따가 할 생각입니다만, 어쨌거나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가만히 있으면 소설을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멀티태스킹이 전혀 안 되는 사람입니다. 전화를 받으면서 옆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고, 밥을 먹으면서 책을 보거나 중요한 자료를 들여다보거나 하는 행동들을 하지 못합니다. 한 번씩 그런 일들을 쉽게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가히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사실 멀리서 볼 것도 없습니다. 제 아내는 멀티태스킹이 얼마든지 가능한 사람인데, 두 가지 일은커녕 심지어 3~4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런 제게 어쩌면 유일하게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일이 있기는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소설을 쓸 때는 희한하게도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소설을 쓰면서 다른 일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두 편의 서로 다른 소설을 쓰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심한 경우엔 세 편의 스토리까지 함께 써 나가 본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 과정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A라는 스토리의 소설을 쓰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창 쓰고 있는데 새로운 주제가 떠오릅니다. 그저 잡생각이라고 하기엔 꽤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정황이 떠오릅니다. 일단 새로운 문서 창을 열어 그때까지 떠오른 것들을 메모해 둡니다. 한 번 읽어 보니 제법 스토리를 갖출 정도의 이야기가 될 것처럼 판단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A 소설을 잠시 미뤄두고 막 생각난 새로운 소설(B)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자리에 앉으면, A 소설의 일부분을 썼다가 잠시 후 B 소설의 일부분을 쓰게 되곤 합니다. 그 어떤 면에서도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저로 봤을 때에는 가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제게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두 가지 소설을 한꺼번에 쓰면, A 소설도 B 소설도 완성도 면에서 한창 못 미치는 작품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물론 그런 우려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A 소설을 쓰다 B와 관련된 내용이 떠오르면, 얼른 B 소설의 내용부터 쓰고 나서 다시 돌아와 A 소설을 씁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도 어쨌거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저에겐 A 소설이라는 한 편과 또 다른 소설인 B라는 결과물이 생겼습니다.


한동안 그런 유혹을 잘 참아왔는데, 잠잠하던 그런 충동이 다시금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지금 이곳에 중편소설 『경계선』을 쓰고 있는데, 어제 느닷없이 단편소설 『악의 씨』가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동안은 현재 쓰고 있는 소설에만 집중을 했는데, 모처럼 만에 도진 그 패턴 때문에 글쓰기를 미뤄두고 밖으로 나가 1시간을 걷다 왔습니다. 그런데 생각이란 것이 어디 가는 건 아니더군요. 기분 전환 차 걷게 된 그 1시간 동안 새로운 스토리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만큼 구상하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부터는 어쩔 수 없이 중편소설 『경계선』과 단편소설 『악의 씨』를 함께 써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솔직히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중편과 단편 모두 완결을 보게 될 수도 있고, 둘 중의 한 편만 완결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두 편 다 완결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쓸 수 있는 데까지는 써보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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