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Nov 13. 2024

늦잠

292일 차.

1년에 두세 번 정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냐고요, 오늘 기어이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몇 번 안 되는 늦잠이었지만, 늘 그때마다 꿈자리가 참 포근하고 아늑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습니다. 오랜만에 참 달콤하고 편하게 잔 것 같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매일이 오늘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달콤함은 짧으면서 짜릿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야말로 지옥을 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뜨자마자 6시 33분이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는 시각이 5시 반입니다. 무려 1시간이나 넘게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쁘게 서두른다고 해도 지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것입니다.


순간부터 제 머릿속은 온갖 시나리오들로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면대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저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떠올렸습니다. 어떤 경로로 가면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을까,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면 최대한 지각 사태를 피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을 만한 속도로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양치를 끝낸 뒤에 안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6시 44분,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는 10분이 걸립니다. 그 속도로 가면 도저히 지하철 시각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6시 51분이면 대구역으로 가는 지하철이 도착하는데, 그걸 놓치면 대구역에 가서 8시 14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내에게 갔다 온다고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니 6시 47분입니다.


그때 달려간다고 해도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신호등이 빨간불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무단횡단을 한 적이 없던 저였지만, 이번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빨간불을 무시한 채 대뜸 길을 건넜습니다. 혹시 동네에 저를 아는 누군가가 무단횡단하는 저를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처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날아 내려가 승강장에 발을 디디니 역으로 가는 지하철이 도착해 출입문이 열렸습니다. 6시 51분입니다.


일단 한숨부터 돌렸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채비를 차린 뒤에 지하철을 타기까지 딱 18분이 걸렸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대구역에 지하철이 도착하는 시각이 7시 10분입니다. 대구역에서 왜관역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시각은 7시 14분이고요. 평소 같으면 내려서 역까지 이동하는 데에 10분 정도가 걸립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지 계단으로 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엘리베이터를 기껏 탔는데, 지하 1층에 서게 되면 1분을 날리게 됩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탔습니다. 함께 탄 나머지 네 사람 중에서 그 어느 누구도 지하 1층에서 내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구역 지하철 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니 7시 11분입니다. 남은 3분 동안 역까지 이동한 뒤에 승강장에 발을 내디디니 조금 전처럼 기차가 막 도착해 출입문이 열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침부터 얼마나 달렸는지 모릅니다. 하필이면 이번 주는 국군의 날 임시공휴일 제정으로 인해 매일 아침 자습 시간에 수업이 한 시간씩 더 배치된 주간이라 늦어도 8시 25분까지는 가야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왜관역에 내리니 7시 32분입니다. 언제 늦잠을 자기라도 했냐는 듯 모든 것이 평온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침부터 그렇게 널을 뛰던 사람과 이렇게 30분의 여유 시간이 주어진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오늘 그것 하나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말입니다. 십년감수했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을 써서 뭘 하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