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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15. 2024

빈틈이 있어서 저는 숨을 쉽니다.

2024.11.15.

오늘의 문장
구멍이 점점 뚜렷이 보인다면 환영할 일이야. 이제야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본다는 거니까. 이젠 받아들여. 네가 너의 구멍을, 네가 너를. 지금 너의 문제는 구멍이 났다는 게 아니라 구멍이 나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신은 그렇게까지 대책 없는 구조로 인간을 설계하지 않았거든. 인간의 영혼은 벽돌담이 아니라 그물 같은 거야. 빈틈없이 쌓아 올려서 구멍이 생기면 와르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들처럼 구멍이 나서 '무엇'이 새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거야. 바로 그 '무엇'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 그렇게 조금씩 영혼이 자라는 거지.
사람의 영혼은 자랄수록 단단해져. 구멍이 난 채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오히려 그 덕에 더 잘 살 수 있어. 정말이야. 믿어도 좋아.     ☞ 유선경, 『구멍 난 채로도 잘 살 수 있다』, 사랑의 도구들, 콘택트, 101쪽     

나의 문장

사실 구멍이라는 말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일반적으로 구멍이라고 하면 안에 뭔가가 가득 차 있어야 하는데 텅 비어 있는 부분이 눈에 보이거나 느껴질 때 그걸 바로 구멍이 있다라고 표현하기 때문이겠습니다누가 생각해도 빈 데가 없이 꽉 찬 상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마련입니다다시 말해서 이건 곧 누군가에게 결핍된 점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기준에 미치지 못한다혹은 어떤 자격에 있어서 미달이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이건 결핍된 그 부분에 너무 치우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자기 자신이 설정한 기준으로 본다면 그런 구멍이 없는 게 바람직할 테지만타인이 우리를 봤을 때 그 구멍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인간적인 구석이 결핍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스스로가 생각했을 때의 우리 안의 구멍은 우리 자신의 인생에 치명적인 하자를 남길 수 있다고 해도타인이 우리에게서 그런 허술한 구멍을 찾을 수 없다면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마치 사람이 아니라 AI 로봇을 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고나 할까요?


이쯤에서 잠시 저를 변호하자면 저에게는 구멍이 참 많습니다저 나름은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철두철미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등 누구보다도 합리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나저와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은 제게 곧잘 구멍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합니다그렇다면 저는 그만큼 허술한 사람이라는 말일까요?


문득 여기에서 말하는 구멍을 을 가리키는 말로 바꿔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이것만큼은 꼭 힘주어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빈틈이 있다는 게 허술하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라고 말입니다즉 저에게 빈틈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저라는 사람 자체가 허술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사람의 빈틈은 어쩌면 숨구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그런 사람의 틈은 어딘가에 조급함이 없이 조금은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유마저 느끼게 합니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만약 우리가 주변에서 여유라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파닥파닥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을 본다면 과연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결코 좋은 모습으로 각인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보고만 있어도 유쾌하지 못한 것은 물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참 빈틈이 많은 사람입니다여기저기에 구멍이 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그렇다고 해서 제게 있는 그 구멍을그리고 그 빈틈을 저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굳이 자랑삼아 떠벌릴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런 빈틈으로 인해 오늘도 저는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조금은 더 인간답게, 그래서 보다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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