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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Aug 08. 2023

평행선 관계

서른세 번째 글: 우리는 만나야 한다.

매일 아침과 늦은 오후 기차선로를 바라보게 된다. 도대체 언제 저 길 위에 놓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길게 쭉 뻗은 모습을 볼 때마다 그저 평행선이라는 단순한 사실만을 떠올리진 않게 된다. 왜 나는 이 선로를 보고 있으면 사람과의 관계를 떠올리게 될까?

사실 선로의 진행 양태는 지극히 평등하고 공평한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두 개의 쭉 뻗은 철길을 각각 왼쪽 선로와 오른쪽 선로라고 지칭한다면, 이 둘은 각자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선로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 혹은 지점까지 앞만 보고 내달릴 뿐이다. 왼쪽이 가는 길을 오른쪽이 간섭할 리 없고, 오른쪽 역시 옆에서 왼쪽을 지켜본다.

초등학교 수학 교과에서 처음 평행선이 나올 때에도 이 점에 특히 주목하여 가르치곤 한다. 평행선이라는 건 우리 눈에 보이는 여기까지 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아무리 먼 곳까지 선이 이어져도 결코 만나는 일 없이 나란히 진행하는 두 선을 평행선이라고 하고, 이 두 선은 서로 평행관계에 있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인간관계들의 모습에서도 이 평행선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흔히 형식적인 인간관계가 특징인 장사회에서는 이런 평행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라고 하더라도 각별히 친분이 두텁거나 더러는 오랜 우정 못지않은 친밀도를 형성한 관계라면 평행관계를 고집해선 곤란하다. 이들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교차하게 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다른 관계에선 기대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공감대가 형성이 되는데, 바로 이 공감대 형성 지점이 서로 교차하게 되는 순간이 된다. 아마도 가장 흔한 예는 교우관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모든 형식적인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교차하길 원한다면 그게 곧 사생활 침해가 되고, 여기에서 더 발전하면 범죄로 진행된다. 물론 양쪽에서 모두 교차하길 원한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평행관계를 유지하면 곤란한 관계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가족관계이다. 조금 더 확장하면 친인척 관계가 될 테다. 사실상 요즘과 같은 시대라면 친인척 관계까지 돌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인가구가 이미 전체 가구의 1/3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더는 예전과 같은 친인척 관계에서 오는 정이나 끈끈함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일 테다. 아무튼 사회의 가장 기초 단위인 가정, 그 최소요건인 가족관계는 평행관계를 고수해선 곤란하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가족끼리는 서로 교차해야 하고, 때로는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기회만 되면 반드시 만나야 한다. 언제든 어디에 있든, 심지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최소한 심정적으로는 만나야 한다. 그것이 곧 가족이다. 극단적인 경우에 엄연히 가족이면서 서로 교차할 수 없는 관계라면 이들은 가족이라고 지칭할 수 없다. 그저 표면적으로만 가족일 뿐, 실제로는 형식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는 것은 물론, 서로 간에 정이 남다른 특정한 인간관계보다도 나을 게 하나도 없는 관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거의 대부분의 엇박자는 이를 혼동하는 데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평행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관계는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각각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가장 이상적인 서로 간의 거리(최소 1.2m 이상)를 유지해야 한다. 상대방의 의향과는 관계없이 이 최소한의 거리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할 때 그 관계는 틀어지게 된다. 반면에 서로 교차해야 하는 관계는 이 최소한의 서로 간의 거리를 과감하게 깨고 들어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코 서로 만날 수 없게 된다.


한 방에서 자고 한 집에서 생활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을 '우리'라는 낱말로 아우를 수 있다면 이때의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한다. 만약 그럴 수 없는 관계라면 그 관계를 우리라고 말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그들'과 '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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