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Aug 08. 2023

식물의 비명

0422

사무실 문 앞에 작은 화분 하나가 쇼핑백에 봉해진 채로 도착했다.

제자가 키우는 식물인데 한동안 소홀한 사이에 잎이 시들고 줄기도 시들해져 어찌하지 못해 보내니 부디 살아나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여기가 식물응급실도 아니고 내가 원예전문가도 아닌데 다 죽어가는 식물을 어찌 살리나 주저했지만 한 번 시도는 해보겠다고 못 이긴 듯 응답했다.

꺼내 놓고 보니 생긴 것은 바오바브나무를 닮았다.

어쩌면 사막의 장미라는 아데니움이 아닐까도 추측해 보지만 붙어있는 몇 개의 잎이 전혀 다르다.

가만히 화분 흙 주위를 보니 잎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 보아 만손초일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줄기를 보니 전혀 다른 형태다.

바오바브나무에 만손초 잎이 달린 꼴이라니!

식물의 이름도 모르니 그 생리도 알 수 없어서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다.


우선 화분으로부터 식물을 분리했다.

뿌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흙을 덜어냈다.

그나마 뿌리는 싱싱했다.

뿌리를 믿어보기로 한다.

기존의 흙을 2/3 버리고 새로운 흙으로 채워 넣었다.

고운 흙으로 덮은 후 누에가루를 탄 물을 듬뿍 주었다.

다른 식물의 경우 잎이 흐물거리거나 생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 물에 희석시켜 주었더니 윤기가 돌고 꽃의 향기가 짙어졌던 적이 있어서 효능을 믿어보기로 한다.

이 녀석에게 활기와 생기를 넣어주고 싶은 마음에 영양소가 풍부한 누에 가루를 영양주사 놓듯이 뿌려주었다.

그다음에 양지바른 창가에 조심스레 옮겨 놓았다.

자꾸 눈이 간다. 회생가능성이 낮은 수술을 마친 아이 같다.

아직은 마취에서 풀려나지 않은 환자 같은 표정을 하고 눈을 감은 채 서 있다.

과연 이 아이는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식물은 동물과 다른 영험함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심장이 뿌리를 비롯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팔다리와 같은 잎과 줄기가 떨어져 나가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것이 식물이다.

기왕 내게로 온 운명 같은 이 식물이 보름 후에는 기지개를 켜고 살아났으면 좋겠다.


하나의 식물을 분갈이하고 보니 주변의 식물들 비명소리가 들린다.

나도 아프다구!

나도 죽겠다구!

나도 숨이 막혀!

식물의 비명소리는 동물의 그것보다 처절하고 웅장하다.

동물같은 볼륨이 없기에 식물은 표정으로 비명지른다.

평상시의 표정들을 알지 못하면 식물의 비명을 전혀 들을 수가 없다.

살아있는 것들은 관찰로서 존재의 깊이를 감지할 수 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바라봄만이 살아있는 것들에게 대한 예의다.

주변의 식물들에게 새로운 흙을 한 줌씩 나눠주고 커다랗게 안아주었다. 

그제서야 식물들의 비명소리가 잦아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행선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