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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02. 2024

안갯속 인생

사백 쉰세 번째 글: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닐까요?

지금 제가 서 있는 왜관북부버스정류장 앞에는 작은 아파트가 한 동 서 있습니다. 많고 많은 말 중에 굳이 '작은'이란 단어를 수식어로 쓰는 건 달랑 한 동짜리 아파트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작은 건물들 너머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조금은 처량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딜 가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촌이 있는 걸 생각하면 요즘과 같은 세상에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닙니다.


저는 매일 아침 7시 50분 전후로 이곳에 도착합니다. 15분 뒤 정류장에 도착하는 버스를 기다리려면 고개를 좌측으로 늘 주시해야 하는데, 가끔은 그러다 좋든 싫든 저 아파트를 마주 보게 됩니다. 자세히 보면 몇 층인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인 느낌을 갖게 합니다. 가끔 드는 생각이긴 하지만 과연 저 아파트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냥 빈 건물만 덩그러니 들어선 건지도 모릅니다.


문득 안개가 짙게 걸린 아파트를 보니 마치 우리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투명한 것 없는 인생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살아가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우리의 미래를 조금은 알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안개가 짙어도 가야 할 길이라면 반드시 발걸음을 떼야하듯 도처에 그 어떤 불안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우린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저런 불안 요소를 다 제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의 앞길에 그 어떤 어려움도 없이 각자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과연 그런 삶이 흥미로운 삶일까 하고 말입니다.


안갯속을 헤쳐 나와 본 사람은 온몸과 옷에 습기가 잔뜩 밴다는 사실을 압니다. 물기 하나 묻히지 않고 안갯속을 통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암초에 부딪쳐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치 안갯속에서 습기를 머금게 되듯 삶에 대한 고뇌와 좌절의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사람이 일평생 동안 아무런 고뇌나 좌절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편하게 살려고만 한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온갖 이유들로 인해 지금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다다르게 될 그 어떤 곳에는 분명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춰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고진감래라고,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내기만 하면 희망은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어쩌면 이 생뚱맞은 생각이 오늘 아침의 저 짙은 안개를 보며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럴 테지만, 저의 인생이라는 것도 결국은 늘 안개가 걸린 길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중입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큰마음먹고 가로지르다 보면 기껏 해 봤자 습기 정도만 몸에 밸 것입니다. 그걸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요. 차라리 이럴 때에는 그 안개를 뚫고 나가면 과연 어떤 일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발걸음을 옮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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