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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습관

0903

by 이숲오 eSOOPo

미사 가는 지하철에서 시집을 편다


사랑의 습관에 대하여

사랑의 관습에 대하여


사랑의 맛은 바구니 가득 방울토마토의 맛처럼 제각각이다


지하철의 칸들은 각각의 연이 되어 역마다 시를 던지고 떠난다


시를 쓰지 못하겠거든 시에 들어오시오


역장의 멘트는 시적이고 도시적이고 시답지 않다


교회력으로 새해 첫날이다


시작을 먼저 가진 것이 시간을 더 가진 것처럼 두근거린다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는 멈추기에도 좋은 시점이라 그런가 보다



일요일은 거꾸로 읽어도 일요일이라서 어떻게 시작하고 끝을 내도 똑같은 날이라는 의미다


길게 내린 눈들이 녹느라 빗소리처럼 나무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어깨에 닿을 때마다 그리움이 번진다


물방울이 어디서 온 줄 모르듯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통 알 수 없다


시민이라면 시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네모난 감성을 둥그렇게 갈아 문지르면 금세 가능해진다


엉터리라고 손가락질 하지 마라


세상의 시인들이 서점에 꽂힌 시집들보다 많은 요즘이 아닌가


시집들은 죽기라도 하는데 시인들은 당최 죽지도 않으니


도시인은 그 안에 시인을 품은 줄도 모르고

원시인은 그 안에 시인을 낳은 줄도 모르고


시작도 시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내듯이


처음에는 시인의 습관을 빌어와 적용하는 것도 요령이겠다


만물을 오래 보고 노려 보고 뒤집어 보고 해체해 보고 재조립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내 오랜 시작의 습관이 낡았음을 알아차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시작도 잘 연습해야 진짜 시작에서 실수를 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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