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든 저는 부산행 무궁화 열차를 탔습니다. 정기권 이용자인 저는 기본적으로 좌석이 없습니다.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하면 빈자리가 더러 있어서 객차 사이를 오고 가곤 합니다. 3호차 뒷문 쪽에서 승차하여 보니 여분의 자리가 보이지 않아 객실을 거쳐 2호차로 건너가던 중이었습니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과거의 제 제자였던 어떤 아이가 보내온 것입니다. 학교를 떠나 온 뒤로는 보지 못했지만 종종 카카오톡은 주고받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얼른 다시 3호차로 건너갔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제자가 앉아서 저를 보며 웃더군요. 7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순식간에 7년의 시간이 제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몇 마디 나누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갈까 싶어 우리는 객차 간의 연결 통로로 나갔습니다. 원래 그 공간은 전화 통화를 하거나 우리처럼 대화를 나눌 상황이 되었을 때 이용하기 좋은 곳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말문이라도 터지듯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사실 그 아이를 만났던 학교는 제 25년 교직생활에 있어서 가장 최악의 학교였습니다. 동료교사들 중에 저와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관리자 중 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악하기로는 관내에서 세손가락 안에 든다며 평판이 자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제 만났던 아이를 비롯해 그 해의 제자들이 제겐 유일한 위안거리가 되었습니다.
고작 15분 간의 짧은 대화였습니다. 옛 전우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웠습니다. 주고받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7년이라는 시간을 넘나들었습니다. 그 시간을 관통할 때는 꽤 힘겨웠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마치 하룻밤의 꿈 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런 게 인생인 걸 알기에 새삼스럽진 않습니다만, 고작 100년도 안 되는 인생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내 우린 대구역에 내렸습니다. 대합실에서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딸도, 그리고 아들도 모두 제 제자였던지라 학부모 상담 주간에 몇 번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눈에 저를 알아보셨습니다. 마침 그 아이도 이번에 수능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데, 아이가 어렸을 때 만난 것과 곧 성인이 되기 직전에 만난 것에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서로를 보며 시간이라는 건 그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때가 마치 어제 일처럼 여겨지지만, 생각해 보면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그 힘겨운 시간을 어찌 건너왔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자주 입에 되뇌곤 하는 말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