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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Sep 09. 2023

이만큼 자면

예순다섯 번째 글: 하루의 절반을 날려 버렸네요.

오늘 일어나 보니 무려 13시간을 자고 말았다. 알 람을 맞춰 놓긴 했는데, 유독 주말이면 들리지 않는다. 식구들한테 물어보면 스마트폰 알람을 듣고 일단은 일어나서 알람부터 끄고는 다시 눕는다 했다. 정말인지 아닌지 나로선 알 수 없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아마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놓였을 테고, 주중에 4시간에서 4시간 반 정도 자는 것도 한몫했지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13시간은 좀 과한 거 아닌가?'

시계를 확인하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얼마나 숙면을 취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일어나고 나니 꽤 상쾌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늦잠을 합리화하려 하니 사뭇 부끄러웠다. 많이 자버린 것을 두고 후회할 생각은 없다. 지나치게 많이 잔 건 맞지만, 후회한다고 해서 지나간 시간이 돌아올 리도 없다. 정상적인 시간에 일어났다면 몇 개의 스케줄은 소화했을 시간, 어느 정도의 숙면으로 부족했던 잠을 보상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요즘 부쩍 주말이면 하루는 꼭 이런 식으로 반토막이 난다는 점이다.

하루 이틀 대중교통으로 통근한 것도 아니다. 벌써 12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고, 거리상으로 따지면 지금의 통근 거리가 먼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가장 가까운 편에 속한다. 혹시 수면 시간 때문인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4시간 반 정도 잔 것만 해도 족히 10여 년은 경과했다. 새삼 지금에 와 굳이 더 피로를 느껴야 할 이유도 없다.


체력방전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누군가가 했다. 그나마 젊었을 때는 힘든 줄 모르고 다니다가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니 이제 슬슬 힘에 부쳐 그렇게 되는 게 아니겠냐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아직 그럴 만한 나이가 아니라며 웃어넘겼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일리 있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긴 잠을 자고 오랜만에 시내에 나왔다. 마치 나만 빼놓고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불과 1주일 전에 와 본 길인데, 있던 가게가 없어졌고, 못 보던 매장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아무리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지만, 그 짧은 시간에 그 정도의 변화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한 번씩 다닐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 있다. 대구에서 속칭 시내라고 불리는 반월당과 중앙로 일대는 젊은이들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커플이 주로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저기에서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인파들은 죄다 서른 살도 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젊은 사람들뿐이다. 중앙로가 아니라 젊음의 거리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사람이 덜 지나다니는 곳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초로를 갓 지난 나이, 사전에선 늙기 시작하는 첫 시기, 즉 45~50세를 초로라고 했다. 초로를 넘어섰다는 건 이제 확실히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테다. 그래서 그런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길거리를 활보할 수가 없다. 마치 와서는 안 될 곳에 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맞다,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는다. 다들 자기 일에 바쁜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이 대로변에 느닷없이 자빠지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자기 갈 길을 당당히 갈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니 내 꼴이 어떻든 뭐라고 하지 않는다. 길거리에 깔린 수천수만 명 중의 한 명에 지나지 않을 내게 굳이 일말의 시선이라도 줄 이유가 없다.

괜한 자격지심이라고 했다. 그 어느 누구도 늙수그레한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라고는 없으니 마음 놓고 다니면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활력의 거리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으려니 문득 그만 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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