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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Sep 13. 2023

동기의 죽음

예순아홉 번째 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소서!

정확히 30년 전, 이름도 없는 시시한 어느 대학교를 다니다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의논 끝에 1학년을 마치자마자 자퇴했다. 그러고는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참고로 지금도 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에게 누를 끼치기 위해 하는 얘기는 아니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내겐 그런 위기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재수학원에 등록하여 한창 공부를 하고 있노라니 자연적으로 난 삼수생 대접을 받으며 1년 동안 학원을 다녔다. 고작 1년이라는 시간뿐이었지만, 뭐 어쨌든 나름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그 결과 천운이 따랐던 건지 그해가 가기 전에 대구교대에 합격했다.

당시에도 남학생들이 교대에 지원하면 일단은 친구들에게 미쳤냐는 말부터 먼저 듣던 때였다. 어지간히 할 게 없어서 남자 새끼가 교대를 가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사실 내가 교대를 선택한 데에는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데다 등록금이 거의 다른 4년제 대학과 비교해 1/3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선택했다. 솔직히 그때까지는 아이들을 좋아한다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가 국악기에 관심이 가는 바람에 2학년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음악교육과로 전과하게 되었다. 기존에 있던 음악과 동기들은 본의 아니게 나보다 나이도 2살 적은 데다 원래부터 내가 음악과 출신이 아니었던 관계로, 표면적으로는 동기라고 해도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던 그런 관계였다. 전체적인 모임이 있을 때에는 마지못해 참석하곤 했어도 개별적으로 동기라고 해서 술자리나 식사 자리를 가졌던 기억은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동기간의 각별한 정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졸업한 뒤로 동기라는 사람들을 못 본 지 거의 25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어제 뜻하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아무리 친분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동기생이니 이름만 들으면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데, 남자 동기 중에 한 명이 어제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 난 움직일 수 없었다. 그걸 무슨 감정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은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봤자 고작 나이 50살이었다. 게다가 더 마음이 아팠던 건 그 동기 부부에게 딸린 아이들이 무려 6명이라고 했다. 막내가 이제 갓 세 돌을 지났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마음이 더 아팠다.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사모님은 어쩌고……, 남겨진 그 많은 아이들은 어쩌고…….


시쳇말로 사람이 가는 데 순서가 있느냐는 말들을 곧잘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갈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25년 넘게 얼굴도 본 적 없고 뭐 하는지 소식도 들은 적 없던 동기에 대해 이런 식의 얘길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 50살이라면,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을 앞으로 더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 시대인데, 이 좋은 세상을 어찌 두고 떠났을까 싶었다. 무엇보다도 여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어찌 두고, 특히 그 세 돌 지났다는 막내가 눈에 밟혀 어찌 그 먼 길을 혼자 갔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비록 30여 년 전이긴 하지만, 그때는 무척 건강한 친구였다. 흔히 말하는 피지컬도 괜찮은 친구였다. 무엇보다도 체육(교대에서는 수업 자체가 초등학교 전 과목을 배우기 때문에 온갖 것을 다한다)도 잘하고, ROTC를 수행하면서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체력을 갖춘 그런 친구였다. 그런 동기가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지금의 나로선 알 수 없다. 사인은 간암이라고 했다. 그나마 지금의 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비관적인 결말을 맞지 않은 건 어쩌면 다행일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 한창 더 살아야 할 나이에 떠나가고 만 동기가 너무 애처로웠다.


가끔이지만, 이런 소식이 들릴 때면 우린 얘길 한다. 다 필요 없다, 건강이 최고다,라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비극적인 일이지만, 그게 또 한 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서글프다. 이런 게 과연 인생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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