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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13. 2023

이층에서 본

0458

가끔 2층에서 본 풍경이 한가롭다.

몽글몽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보이는 건 창프레임에 따라 혹은 서있는 위치에 따라 제각각이다.

중력에 반발한 커다란 나무들.

중력에 충실한 커다란 건물들.

2층에 있는 나는 잠시 날고 있으니 새의 시선이다.

소음은 분수처럼 위로 치솟기에 보이지 않는 소녀들의 재잘거림이 열린 창 사이로 넘어든다.

간지럽다. 햇살이.

2층은 높이에 주눅 들지 않고 머무름을 돕는다.

피사체가 분명하게 내려다 보이는 위치다.

3층부터는 소홀해질 풍경들이 2층에서는 세밀하고 살갑다.

올려다 보아도 좋고 내려다 보아도 좋다.

통창이어도 좋고 창문이어도 좋다.

어릴 적 이층 집은 로망이었다.

그곳에는 파랑새가 날아다니고 신데렐라가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마천루가 즐비한 요즘에는 이층 집이 귀하고 낯설다.

그 아쉬운 바람을 복층에서 채우기도 한다.

집 안에 들어 있는 이층 집은 다정해 보인다.

다락도 아니고 별채도 아닌.

그저 높다란 천장과 바닥 사이에 있는 하나의 공간.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찔하다.

다정함보다 새침함이다.


이층에서 본 거리는 가을스럽다.

이층에서만 계절의 감각이 섣부르다.

이층에만 담긴 정서와 기분이 있다.

이층은 아날로그와 어울리고 첨단과 대적한다.

외로운 날에는 이층으로 올라가고 싶다.

건물의 이층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2층 하나 정도는 마련해 두자.

이층은 이승 너머의 이승.

사다리를 타고라도 동앗줄을 붙잡고라도 이층에 가서 세상을 보자.

일층에서 저지른 슬픔들을 이층에서 날려버리자.

종이비행기 살포시 접어 날리면 거리의 해바라기들이 환하게 웃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층 덕분에 거리는 분주하고 풍경은 다감해진다.

펄럭이는 빨래도 이층에서는 소망의 깃발이 된다.

부디 이층에게 하소연하기를 즐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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