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은 서울행, 비 오는 수요일입니다. 빗소리는 좋은데 길 막힌단 소식은 좋지 않아요. 경부고속도로 서초 IC쯤에 사고가 났다며 전광판에 빨갛게 뜹니다. 도로가 자동차로 빨갛게 변했습니다. 양재 IC 근처까지 주차장이네요. 빵빵 듣던 음악을 끄고 좌뇌 가동합니다. 평소에도 막히는데 고속도로 진입까지도 오래 걸릴 겁니다.
근처 보이는 건물에 주차합니다. 전철을 타야겠다!
어라? 가방에 지갑이 없어요. 자동차에 동전 하나도 없군요. 스마트폰에 신용카드앱 한 개, 그런데 교통카드는 안되거든요. 음... 빠릿빠릿 생각합니다.
카드 따윈 하나도 없으니 근처 은행에서 현금 인출도 불가능, 만원쯤 빌려줄 사람이 근처에 사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경우 주차장에서 다시 차를 끌고 나가야 합니다. 차 안에서 목적지 도착 전에 일 마무리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오지 않았으니 스마트폰으로 해야겠어요. 동영상, 토론 주제, 보고서 양식.
내일 해도 될 일을 왜 오늘 하냐고!
이러다 오늘처럼 일터지는 거 한두 번이 아닙니다. 반성보다 문제해결력 시험에 도파민 솟습니다.
스마트폰 신용카드에 마지막 희망을 겁니다. 교통카드 기능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 클릭! 클릭! 뒤적거리다 옵션 두 개 발견해요. 티머니와 캐시비예요. 티머니는 제 폰 유심에 맞지 않다며 오류로 튕기니 머릿속이 빳빳해집니다. 캐시비는 뭘까? 클릭을 따라가다 보니 지문 인증하고 후불 교통카드로 등록이 됩니다. 오호!
차에 벌려둔 자료 긁어 가방에 넣고 헉헉 전철 타러 갑니다. 전철은 미세 먼지가 많아 눈감고 갑니다. 버즈 끼고 음악 듣다 삐릿하고 한쪽이 꺼집니다. 배터리가 죽는 중입니다. 목적지 도착할 때쯤 한쪽마저 죽습니다. 그래 잘 가라, 난 오늘도 살아내러 간다.
무사히 일정 마치고 주차한 건물로 옵니다. 정문이 잠겨 있습니다! 쪽문을 찾아 들어가 지하 2층 제 차에 안착합니다. 시동을 켜고 스마트폰 블루투스 음악이 차에 접속됩니다. 이완맥그리거와 니콜키드먼이 부른 Come What May가 웅장하게 흐릅니다. I will love you until my dying day.
아무리 대책 없이 살아도 이렇게 하루를 무사히 보낸 저를 제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