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이별
일흔여섯 번째 글: 격식과 예의를 갖춰 이별해야 한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데면데면한 사이라면 몰라도 얼마나 친밀도가 높은 사람과 이별했느냐에 따라 그 정도는 충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헤어짐 그 자체가 슬픈 일인 건 분명하나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을 전제한다는 것에서나, 혹은 조금 더 나은 내 모습으로의 정신적 성장을 꾀한다는 점에선 이별이라는 것도 가히 나쁜 일은 아니리라.
흔히 이성과의 관계에서 이별한다는 것은 꽤 극복하기 힘든 시련을 가져다준다. 물론 교제한 기간이 얼마냐에 따라 그 시련의 깊이는 차원을 달리하게 될 테다. 게다가 깔끔하게 헤어지지 못한 경우라고 한다면, 이후에 새로운 인연을 맺는 데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들 수 있다.
한때 유행했던 어느 노랫말처럼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가세요'가 아니라 최대한 격식과 예의를 갖춰 상대방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상대에게서 일종의 암묵적인 혹은 원만한 동의를 얻어내는 절차를 거쳐야 그 묵은 관계를 청산할 수 있게 된다.
내겐 이십수 년 전에 헤어진 한 사람이 있다. 이후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몇 차례의 관계를 거친 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여 두 아이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음에 깊은 흔적이 남은 건, 적어도 내 입장에선 완전한 이별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시쳇말로 잠수 이별이라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내게 안겨줬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말이 필요했던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난 그녀에게서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왜 내가 싫어졌는지,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등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그때 난 내 나름대로 몸부림을 쳤었다. 정상적으로 이별을 통보한다고 해서 그걸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한다고 해도, 해명이라도 해줬다면 온갖 억측과 추측으로 수많은 밤을 헤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슨 운명의 기이한 장난인 건지 이십수 년 동안 난 그녀를 딱 두 번 만났다. 아니, 마주쳤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다. 첫 번째 마주침은 그나마 길거리에 선 채 3분가량 안부라도 나눴지만, 두 번째는 뒷모습을 본 것이라 인사는커녕 눈빛조차 마주칠 수 없었다. 그때에도 달려가 왜 내게서 떠나갔는지를 묻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묻는다고 해서 속 시원하게 말할 리야 없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은 그랬다.
거의 10년 넘어 한 번꼴로 봤으니 앞으로 족히 10년은 더 기다려야 그녀를 또 그렇게 볼지도 모르겠다. 지금 마음 같아선 그땐 꼭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모하고 돌발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