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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20. 2023

아무도 옳은

0465

나만이 옳다고 여겨온 순간들을 돌어본다.

옳다고 주장한 저편에는 상대의 옳음이 놓여 있다.

서로가 다른 옳음에서 나의 옳음을 지키려 차이의 진실을 놓친 탓이다.

옳은 것들은 틀림만큼이나 다른 모양을 지닌다.

겉으로 일치하지 않은 듯 보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같거나 다르다.

옳음을 틀림으로 판단케 하는 것은 고쳐 바라보려는 의지의 부재에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를 향한 수고로움은 때로는 지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것은 하찮은 패배이다.

더 큰 패배는 옳음의 일치와 차이의 가치를 놓치는 손실에 있다.

인간은 이토록 어리석다.

손뼉 치는 것을 따귀를 맞는 것보다 부끄러워한다.

박수는 부추김이다.

박수는 들어 올림이다.

박수소리는 차이의 소음을 상쇄시킨다.

자잘한 것들을 거대한 파도가 삼켜버리고 지나간다.

연결된 것들은 그 파장의 영향권이다.

그러니 상대의 옳음을 인정하면 나의 옳음도 안정된다.

카니자의 삼각형처럼 나의 옳음이 드러난다.

한국화에서는 달을 그릴 때 주변의 표현으로 달이 드러나게 묘사한다.

어쩌면 나의 옳음 들도 무수한 외부의 도움으로 형성된 그림자이자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른다.

내 옳음 중에서 견고한 것들은 외부의 지지로 자리 잡은 것이 대부분이다.

지지 없는 옳음은 보통 고집이나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

생각으로부터 폐기의 대상이다.

누구도 그르치다에서 아무도 옳다로 선회 중이다.

그르침은 틀리다보다 공격적인 부정의 시각이다.

상대를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이 적극적인 자기 방어라는 착각을 경계해야 한다.

자기 옳음의 무정부상태를 인정하는 꼴이다.

견고한 옳음은 다른 옳음을 수용하고 포용한다.

양쪽으로 부드럽게 열리는 문이 벽이라는 오해에서 자유롭다.

한쪽으로 열리는 문은 바리케이드에 가깝다.

흐름을 멈춰 세운다.

건전한 옳음은 날이 서지 않는다.

나의 옳음을 개방하리라.

나의 틀림 들을 솎아내기 위해 불가피하다.

스스로 할 수 없는 경우엔 밖의 도움이 절실하다.

잘 받아들이는 것도 옳음에 해당한다.

잘 버리는 것도 옳음에 기여한다.

오늘 하루도 세상이라는 햇빛 아래에 나의 눅눅한 옳음 들을 낱낱이 꺼내 살균하고 말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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