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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Sep 22. 2023

주디, 처먹다

일흔여덟 번째 글: 사라진 시민 의식?

출근하려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늘 그랬듯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다. 그런데 문득 눈을 돌린 곳에 유쾌하지 않은 광경이 포착되었다. 아파트 단지 외벽에 만들어 놓은 작은 꽃밭 턱에 누군가가 마시다 만 커피를 올려두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네 개씩이나.......

딱 전형적인 테이크 아웃용 커피였다. 즉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네 잔의 커피를 마셨을 리는 없다는 것이겠다. 최소한 일행인 네 사람이 마셨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서로 모르는 각각의 네 사람이 한 소행인지도 모른다. 이럴 때 흔히 사라진 시민 의식이 어떠니 저떠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경상도 지역은 말의 표현에 있어 타 지역보다 다소 거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두고 다음과 같이 표현하곤 한다.


처먹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물론 여기에서 '놈'을 가끔은 '새끼'라고 표현할 때도 더러 있다. 그냥 커피 한 잔 마시다 플라스틱 용기를 놔두고 간 건데 '처먹는다'라는 표현이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상식에서 판단해 보자면 저렇게 플라스틱 용기를 내버리고 간 사람이라면, 커피를 마신 게 아니라 처먹은 게 맞다. 이왕에 말이 났으니 하나만 덧붙이자면 이때 커피를 마신 입은 입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조디' 혹은 '주디'라고 표현해야 옳다. 이때 '디'는 문둥이가 문둥이가 되고 궁둥이가 엉덩이가 되는 것처럼 주둥이의 경상도식 표현방식에 해당할 테다.


사람은 입이라고 지칭해야 옳고, 동물 혹은 짐승에게는 입이 주둥이가 되는 법이다. 그렇게 본다면 단순히 커피를 마신 행위를 두고 짐승이 벌인 짓이라도 되는 듯 '주디' 혹은 '조디'라고 표현하는 게 과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엔 적확한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더불어 커피를 마신 그 어느 누군가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 볼 점이 하나 있다. 한 짓은 얄미우나 굳이 그들의 편을 들자면 주위에 쓰레기통이라고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길가에 쓰레기통이 없으니 아무 데나 버려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시청 환경과에서 근무했던 지인이 한 말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길가에 공공 쓰레기통을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듯 예산 부족 탓이 아니라고 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쓰레기통을 설치했을 때 관리가 전혀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분리배출이 안 되는 건 기본이고, 버려선 안 되는 물건들 즉 음식물 쓰레기나 개인 쓰레기 뭉치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쓰레기통이 있으면 주변이 더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있던 쓰레기통도 치운다고 했다.


왜 이런 시민 의식을 보이는지 사람들만 탓할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투척하는 사람들 때문에 쓰레기통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논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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