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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Sep 30. 2023

어떤 오지랖

여든다섯 번째 글: 오지랖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학부모님 한 분이 있다. 올해 내가 맡은 한 아이의 어머님, 결론적으로는 올해 초까지는 일면식도 없던 분이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그 어머님에게 한 가지 일을 집요하게 꼬드기고 있는 중이다.

"어머님, 저는 어머님이 꼭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담임이면 담임이지, 어디 가서 이만한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물론 아무에게나 내가 그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다.




학년 초, 그분이 내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 다른 부분까지 공유는 곤란하나 내 마음을 움직인 가장 결정적인 대목이 있었다.


***에게서 학교에도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말에, 아이가 꽃을 바라보기도 하는구나 싶어 감사했고, 또 한 가지는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봄처럼 설레게 찾아오신 우리 *** 선생님, 목소리는 어떠실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처음엔 비대면으로 학부모 전화 상담이 잡혀 있었던 탓에 목소리 운운하셨을 테지만, 24년째 교직에서 학생을 가르쳐 오는 동안 난 단 한 번도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읽는 당시에도 마음에 동요가 일었지만, 난 계속 그 어머님이 궁금했었다. 과연 어떤 감성을 가지신 분이실까, 어떤 표정을 하고 계시길래 짧은 톡 메시지에서도 저런 표현들이 가능할까, 하고 말이다.


이후에도 수차례 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아이의 일과 관련해, 학교의 일과 관련해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하는 형식이었다. 그 어머님은 어떠셨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 어머님의 톡 메시지를 기다리게 되었다. 보내실 때마다 꽤 장문의 톡을 보내 주시는 지라 읽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그분의 톡은 하나의 힐링이 될 정도로 표현이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메시지를 늘 주고받는 건 아니었다. 아이와 병원을 갔다 온 어느 날 이런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전 아직 어른엄마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이한테는 너의 그대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사랑한다고 하면서, 마음의 소리로는 자꾸 욕심이 생깁니다. 천천히 크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도 욕심인 건지, 내려놓기가 참 힘이 듭니다. 선생님! 인생선배이자 부모선배로써 육아 *년차인 저에게 쓴소리 한 번 해주십시오!


과연 어떤 학부모가 이런 문자를 선생님에게 보낼까 싶었다. 문자를 주고받을 때마다 증폭되는 궁금증,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내 나름 고심한 결론은 오직 한 가지였다. 바로, 그분은 글을 쓰셔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기회가 될 때 그 어머님에게 글을 써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정식으로 제안을 드릴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7월 초순 경, 학교 앞에서 우리 반 학부모님들이 교통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그 어머님이 나오셔서 5분 정도 옆에 서서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보기에 분명히 그분은 조금은 다른 감성을 갖고 계셨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얼굴에 철판-사실 여기 와서 글을 줄곧 쓰면서 많이 뻔뻔해졌지만 그것이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을 깔고 정식으로 제의를 드렸다.

"어머님, 저는 어머님이 꼭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결정적인 제안은 얼마 전 있었던 학부모 대면 상담에서였다. 2시간 40분에 이르는 상담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틈틈이 글쓰기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마치 특정한 종교 전도자가 말끝마다 종교의 교리를 설파하듯 나는 그 어머님에게 글을 쓰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잊지 않았다.


어떤 결정을 내리실지, 또 언제쯤 블로그 등을 만들어 글쓰기를 시작하셨다는 답장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꼭 그 어머님이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 이웃 추가를 하고 종종 왕래하며 각자가 쓴 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나로선 더 바랄 게 없겠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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