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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1. 2023

밤에 쓰는 글

밤에 쓴 글은 발행하지 못한다?

신달자 선생이 쓴 작품 중에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못한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발행연도가 1989년, 게다가 제가 이 책을 읽은 게 교대 다닐 때였으니 족히 25년은 훌쩍 넘은 것 같습니다. 그때는 꽤 흥미롭게 읽었지만, 어떤 내용의 책이었는지 기억에도 없고, 아마도 수필인 걸로 알고 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소설이었는지 수필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기에서 기억에도 없는 작품을 들먹이는 이유는, 제목 자체가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못한다, 는 말은 브런치스토리 식으로 표현하면 밤에 쓴 글은 발행하지 못한다, 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과연 밤에 쓴 글은 발행할 수 없을까요? 오늘은 그 점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글을 써보면 분명히 느끼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낮에 쓴 글과 밤에 쓴 글, 양쪽의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쓴 두 편의 글, 즉 낮에 쓴 것과 밤에 쓴 것을 비교해 보면, 어떤 경우에는 같은 사람인 제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낮에 쓴 글과 밤에 쓴 글을 각각 들이밀면 서로 다른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사람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현상을 보이는지 궁금해 몇 군데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인간은 낮과 밤에 태양빛의 유무 때문에 호르몬 분비가 미묘하게 달라진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낮에는 좀 더 이성적인 경향을, 밤에는 반대로 감성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고 한다.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라.'는 격언도 있는데 실제로 밤이나 새벽에 쓴 글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우가 대부분, 이를 일컬어 '밤의 마력' 또는 '새벽 감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 출처: 나무위키, "밤"


태양빛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에 따라, 또 이때 분비되는 호르몬의 차이에 따라 '밤의 마력'에 끌리거나 '새벽 감성'에 젖어 다분히 감상적인 글을 쓰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호르몬이 분비되느냐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호르몬 운운하는 걸 보면 적어도 이건 의지로 극복하기가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네, 저도 소싯적에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온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편지는 밤에 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만,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편지를 쓰기가 더 어려웠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겨우 겨우 완성한 편지를 읽어보면 어쩌면 이렇게 유치한 글을 썼나 싶어 읽고 있는 제 자신이 민망할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깊은 밤에 쓴 연애편지를 다시 읽지 않고 봉투에 고이 넣어 밀봉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딱 밤에 쓰고 있는 글인 셈입니다. 언제 분비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은 그다지 감상적인 투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해결해야 할 문젯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밤에 우리는 그 어떤 글도 쓰지 않아야 할까요?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인 같은 경우엔 밤이 아니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나지 않는 데다, 밖에 나가 있는 상태에서 주변의 모든 소음에 갇힌 채 온전히 글을 쓰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이성적인 혹은 논리적인 글은 낮에 쓰는 것입니다. 업무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하고 남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감성적인 글을 써야 할 때에는 밤에 쓰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잊어선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만약 밤에 한 편의 글을 썼다면, 더군다나 꽤 깊은 밤이나 새벽에 글을 썼다면 절대 다시 읽어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못하고, 밤에 쓴 글은 발행할 수 없습니다만, 글을 완성한 후에 읽어보지 않는 습관을 들인다면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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