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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3. 2023

글을 쓸 때면……

저는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합니다.

저는 소설을 씁니다. 맞습니다. 누군가가 정중하게 저에게 말했던 것처럼, 따지고 보면 제가 쓴 소설은 그 어느 누구도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감히 어디 가서 제 글을 '작품'이라고 표현하지도 못할 정도로 허섭하기 짝이 없는 글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소설을 쓸 때, 혹은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낍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이유를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글쎄요,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왜 글을 쓰는지,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것 중에 가장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에 혼자 그렇게 목을 매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아마도 이 점에 대해선 저뿐만 아니라 글을 쓰시는 많은 분들 또한 그런 생각 혹은 고민에 빠져 보신 적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재미없다고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을 글에 왜 그렇게 열일을 제쳐놓고 매달리느냐고 하겠지만, 저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일들보다도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를 두고 얼마 전 친한 친구 한 녀석이 저에게 딴지를 걸었습니다.

"야, 너도 골프 쳐 볼 생각 없냐? 이거 정말 재미있고 생각보다도 운동이 많이 되거든."

"골프는 무슨?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그리고 그 따분해 보이는 걸 나보고 하라고?"

"왜 그런 말 있잖아? 서서 하는 것 중에선 골프가 제일 재미있고, 앉아서 하는 것 중엔 노름이 제일 재미있고, 누워서 하는 것 중에는 그게 제일 재미있다고 말이야. 이참에 골프 한 번 배워봐."

"됐어. 난 그냥 글쓰기나 할 거야. 넌 몰라도 내게는 말이야, 서서 하는 것 중에서, 앉아서 하는 것 중에서, 그리고 누워서 하는 것 중에서도 글쓰기가 제일 재미있으니까."


글을 쓸 때면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느낌입니다. 아니지요, 세상의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신이 된 느낌입니다. 특히 이런 느낌은 소설을 쓸 때 더 강하게 들게 마련인데, 제가 설정한 배경과 스토리 속에 제가 정성껏 빚어 만든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스토리를 끌고 나가다 보면 최소한 줄 달린 인형을 조작하는 예술가가 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제가 창조한 등장인물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저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마치 방금 전에 그 좁은 주둥이를 뚫고 나온 '지니' 같다고나 할까요? 분부만 내리십시오, 주인님, 이라고 하는 듯 제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군소리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불만도 없습니다. 제가 어딘가로 가라고 하면 두말없이 지시에 따르고, 이 대목에서 이런 행동을, 저 장면에서 저런 말을 하라고 하면 단 한 번도 어기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 역시 풀리지 않는 고민이나 답답한 문제들은 있지만, 글을 쓰는 저는 굳이 누군가를 만나 상담을 한다거나 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훌륭한 상담자인 또 다른 저의 모습이 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의식, 거창하게는 설명할 수 없으나, 글을 쓸 때마다 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저의 무의식은 종종 제게 훌륭한 상담자의 역할을 해줍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상담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느끼게 되니, 이만하면 글쓰기가 저에겐 하나의 치유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원래 글쓰기는 1차적으로 글을 쓰는 본인의 아픔이나 상처를 치유하게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제 속에 울림을 주게 되고, 그 울림이 언젠가는 좌절했던, 뭔가에 상처를 받아 움츠려 들었던 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그 울림이 깊어지고 넓어져 타인에게까지 이르게 되면, 즉 제 글을 읽는 그 어느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까지 보듬어 줄 수 있게 되면, 그때 저의 글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의 제 글은, 우선 저만 치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혼자서 읽으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때로는 제 글에 울거나 웃기도 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힘을 얻곤 합니다. 언젠가는 저의 글이 다른 사람, 즉 제 글을 읽는 타인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려 합니다. 물론 저의 글쓰기는 그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전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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