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여덟 번째 글: 생각 안 날 땐 이렇게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
연휴 다섯 번째 날에 드디어 짬이 나서 집 앞 파스쿠찌에 왔습니다.
올 때마다 보이던, 보기만 해도 미소가 그려지는 그 점원은 온데간데없지만, 여전히 매장 내엔 그리 시끄럽지 않은 음악이 흐르고 커피 등을 마시는 사람들이 더러 보입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익숙한 장면에, 낯섦이 적은 장소에 마음이 놓이는 법인 모양입니다. 굳이 횟수를 헤아리자면 그래 봤자 온 게 스무 번도 안 될 텐데, 이곳 파스쿠찌는 올 때마다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메뉴판을 장식하고 있는 스무 가지가 족히 넘는 음료엔 전 관심이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마시는 것은 캐러멜마키아토 아니면 카페 모카입니다. 그 외엔 마셔보고 싶은 생각도 없고 궁금증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 싸다고는 볼 수 없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실패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랄까요, 저처럼 단순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라면 한번 먹어보고 괜찮으면 죽을 때까지 그 음료만 찾게 됩니다.
제가 앉아 있는 자리는 삼각형 모양을 한 탁자가 놓여 있습니다. 각각의 면에 두 개의 의자가 배치되어 있으니 총 6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여길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이 자리에 6명이 둘러앉아 있는 걸 본 적은 없습니다.
삼각형 중앙엔 무슨 탑 모양의 구조물이 대략 70cm가량 삐죽이 솟아 있고, 각 면에는 콘센트가 달려 있습니다. 반갑게도 두 가지 기기를 꽂을 수 있어서 하나는 노트북,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을 연결해 놓습니다. 가정집처럼 충전도 하면서 글도 쓸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시간이 나면 종종 들르곤 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제가 앉은자리에서는 고개를 들면 우선은 싫어도 매장 점원의 측면이 보입니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빤히 쳐다보는 실수를 저질러선 안 됩니다. 게다가 점원은 상당히 젊은 나이지만, 저는 그 점원의 곱절은 되는 나이인 셈이니 더욱 조심해야 됩니다. 맞습니다. 요즘은 그냥 보는 것만 해도 충분히 범죄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아무튼 주변의 모습을 살피려면 적당히 눈치를 봐야 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들어왔을 때 있던 손님들이 죄다 나가고 매장 내엔 그 점원과 저, 단둘뿐입니다. 2층에도 매장이 있습니다만, 아무런 소음이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선 저처럼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는 손님 소수가 있거나 아니면 텅 비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매장의 장점 중 한 가지는 흡연 장소가 매우 가깝다는 것입니다. 제 자리 뒤로 4미터 정도만 가면 철문이 하나 있는데, 그걸 열고 나가면 바로 재떨이가 있는 장소가 나옵니다. 저 같은 경우엔 글이 잘 풀리지 않거나 혹은 한 편의 글을 다 마무리한 뒤에 한 개비 태우러 밖에 나갔다 옵니다. 여긴 서로의 흡연에 대해선 일체의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려 보이든 많아 보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습니다. 깔끔하게 뒤처리를 하고 난 뒤 들어오면 다시 글의 세계로 빠져들면 됩니다.
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일면식도 없는 한 여자 손님이 계단을 딛고 올라서고 있습니다. 소리가 나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가지만, 글을 쓸 때면 늘 안경을 벗는 게 버릇이 된 지라 자칫 시선을 잘못 주면 째려보는 것처럼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안경을 끼고 있지 않을 때에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그나저나 달랑 커피 한 잔 시키고 앉아 있으려니 괜스레 염려가 들긴 합니다. 뭐, 그다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길 주로 출입하는 연령대의 사람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니 괜히 민폐가 되는 건 아닌가 싶은 기우 때문입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다가도 한 번씩 고개를 들어 매장을 둘러보곤 합니다. 눈치 없게 명당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1층 매장엔 저 말고는 손님이 없으니 어지간히 눈치는 안 봐도 될 것 같다고 마음을 놓아봅니다. 사람이 점점 차면 어쩌면 저도 얼른 짐을 꾸려야겠지만…….
사진 출처: 대구의 파스쿠찌 어느 매장에서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