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네 번째 글: 요즘은 도서관이 아니라 카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 가는 길입니다. 예전에 있던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한 곳이지요. 아마 제 기억으로는 1년 반 넘게 다른 곳에 서가를 꾸려 임시도서관을 운영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말이 임시도서관이지 큰 빌딩의 두어 층을 빌려 꾸려 놓은 곳이니 도서관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시설이 열악했었습니다. 다시 같은 자리에 재개관한 지는 대략 2달 조금 넘었습니다.
추억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자꾸만 사라진다는 것은 못내 아쉽습니다만, 예전의 그 허름하고 낡은 건물은 온데간데없이 모든 시설이 일단 사람의 눈을 흐뭇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게 바뀐 점이라면 벽 쪽에 열람실이 있고 그 외의 대부분은 홀과 화장실 등이었던 구조가 모두 실내로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뭐랄까요, 같은 면적의 일반 주택 전체를 아파트식으로 개조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자료실 전체의 면적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습니다. 게다가 콘센트 시설을 많이 해놔 노트북 등의 각종 정보통신기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또 군데군데 딱딱한 의자가 아닌 소파도 놓여 있어서 더러는 책을 보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좋은데, 점심시간 무렵이면 소파에서 쪽잠을 청하는 사람도 더러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책장과 책장 사이의 거리가 멀어 책을 고를 때 주변 사람들과 부딪칠 우려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지난달 어느 날, 재개관(7월 28일에 재개관했다는 건 방금 전 확인)했다는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들렀다가 정말이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그 도서관이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그 어떤 것이 사라지고 낯선 것이 등장해 버리고 말았으니, 사실상 저 같은 성격에 일단은 거부감부터 들기 마련입니다.
집에서 거리는 다소 멀었어도 대구에서 가장 크다는 이유로 1주일에 한 번씩은, 아니 어쩌면 못해도 1달에 두어 번은 꼭 오곤 했던 곳이었습니다. 도서관 중에서 시설은 가장 낡은 편에 속해도 제일 크다는 건 읽을 만한 책도 가장 많다는 걸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 읽든 읽지 못하든 올 때마다 몇 권씩은 책을 빌려갔고, 나름으로는 유용하게 시간을 보내게 해 준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이런 걸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는 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공부하고 책을 읽거나 빌리기 위해서 가곤 했던 도서관에, 이젠 글을 쓰기 위해 가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본연의 목적을 벗어난 방문인 셈입니다. 그래도 글을 쓸 때 그때그때 필요한 자료들을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고,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매장보다는 확실히 조용한 가운데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더 없는 장점이겠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이제 대놓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는 걸 뜻합니다. 제가 알던 대부분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골방에서 탁한 커피와 매캐한 담배연기에 묻혀 글을 썼습니다. 그것도 가끔씩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글쓰기라는 것이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끌려 나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분명 이것은 반가운 변화일 것입니다. 설령 부끄러운 것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글을 쓴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어쩌면 자랑스럽게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었다면 바뀐 세상에 빨리 적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가서 과연 빈자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지난 일요일엔 10시 조금 넘어 도착해도 자리가 있었는데, 오늘은 어쩌면 허탕치고 돌아올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사진 출처: 대구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서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