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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08. 2023

눈뜨면 기적

0483

놀랍다.

어제 눈을 감았는데 눈을 뜨니 오늘이다.

바라지 않았으나 이루어졌다.

계획하지 않았으나 그리 되었다.

거저 주어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당연하다 여기지 않으니 눈물이 난다.

어제도 살았으니 오늘도 살아 있어야 한다는 건 얼마나 오만한 확신인가.

어제와 오늘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

매일이 독립된 삶의 영토 아닌가.

어제 길을 가다 인사한 이웃에게 오늘 외면해 보라.

이제껏의 호의는 사라지고 반목의 카드를 내미리라.

어제 마시고 뱉은 호흡은 순전히 어제만의 과업.

오늘은 다시 쌓아 올리는 탑이고 도미노이다.

오늘 아침 창가에 날아와 지저귀는 새의 언어를 귀담아듣는다.

어제와 다른 박자와 리듬으로 쏟아낸다.

어제는 빗줄기에 날개가 젖어
비행이 피곤했다오 아기새의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게 태산을 옮기는 것 같았네


누구나 들었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전혀 다른 하루임을 알아차린 이들이라면 누구나 인간 밖의 수많은 언어들이 들릴 것이다.

심지어 사물들이 아우성치는 소리들은 더 잘 들린다.

무엇보다 내 안의 소리는 귀 기울이는 수고 없이도 수시로 들릴 것이다.

이제껏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이 펼쳐졌다.

어젯밤 백만 명의 가슴을 살랑거리게 했던 여의도의 불꽃놀이 보다 경이로운 순간이다.

이 순간을 놓친다면 우리는 평생 등잔 밑의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주변을 헤맬 것이다.


오늘 잠든다고 내일이 알아서 올 거라는 걸 믿지 않는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나야 가능하다.

그야말로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내일이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야 내일이 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해 보자.

우선 내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고스란히 존재해 주어야 하고 나를 둘러싼 공기들이 산소를 함유하고 있어야 하고 내 심장이 조건 없이 뛰고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밤새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살아있어줘야 하고 내가 쓴 글들이 여전히 휘발되지 않고 브런치스토리에 남아있어야 하고 어제까지의 기억이 오늘에게 공짜로 인수인계를 해줘야 한다.

이 수많은 것들이 어찌 당연해야 하는가.

기적이 아니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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