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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6. 2023

나에게 글쓰기란……

저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딜 가서든 저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엔 저런 글을 썼고 지금은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실상은 마음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마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얘기일 겁니다.


자의로 선택했든 타의가 크게 작용했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글쓰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글을 쓰는 데 있어 이만큼 넉넉한 환경을 갖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다른 직업에 비해 비교적 짬이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론상으로만 본다면 그 시간만 활용해도 일주일에 단편 하나 정도는 너끈히 쓸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퇴근 후에 친구를 만난다든지 하면서 불필요한 술자리를 갖지 않습니다. 집에서 학교로, 다시 학교에서 집으로, 이건 이미 결혼 전부터 이어온 생활의 패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과 현실은 늘 엇박자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건 마치 행선지가 정해졌고 시간도 넉넉해 지금 당장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데, 막상 차 기름이 바닥을 드러내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차가 미동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문득 그동안 써둔 글들을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열 편이 훌쩍 넘는 단편들, 너덧 편의 중편들, 그리고 장편 두 편. 어찌 보면 반짝, 하고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대부분의 작가들보다 더 많이 쓴 건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써왔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작품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면 한없이 부끄러워지긴 할 겁니다. 그래도 당당히 말하건대 이 녀석들은 제 배 아파서 제가 낳은 자식들입니다. 남이야 뭐라고 해도 저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그런 자식들이라는 얘기입니다.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저는 제 글을 대합니다. 이 정도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애착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 그러면 어떻게 오랜 기간 동안 그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어쨌거나 저의 글을 볼 때마다 저는 느끼는 게 있습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똑같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깥에 내놓고 싶은 녀석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감추고 싶게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마음에 그나마 드는 몇몇의 글들, 그 외엔 쓴 저조차도 숨기고 싶은 글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써놓은 글엔 쉽게 덤벼들지 못합니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도 아픔이지만, 고치려면 한도 끝도 없어서 어쩌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내친김에 또 다른 폴더를 열어 봅니다. 그동안 썼던 글들보다 그 수가 더 많은, 쓰다 만 글을 모아놓은 공간입니다. 여긴 그야말로 저에겐 그냥 아픔 그 자체입니다. 즉흥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올라 마구 휘갈겨 써 내려가다 어느 순간엔가 멈추고 만 것들입니다. 지식의 부족에서 생긴 일입니다. 일천한 경험 탓에 벌어진 불상사입니다.


시간을 내어 몇 개의 글을 읽어 니다. 부족한 잠을 달래 가며 저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읽지 않을 글과 사투를 벌이던 그때의 기억들이 선연합니다. 즐겁기도 하고 더없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굳이 왜 이렇게 힘겨운 길을 가고 있을까요? 과연 글이란 건, 그리고 글쓰기란 건 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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