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 이별 (part. 1)
백열 번째 글: 제 리즈 시절 이야기입니다. ^^
1990년 19살, 즉 고3 때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저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았습니다. 그런 제게 어머님은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중요한 시기에,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기에 그러고 다녔으니 어머님은 충분히 분개하실 만했습니다. 아무튼 제가 맡은 아이들은 초등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교대에 진학하게 된 것도 어쩌면 주일학교 교사 이력이 한몫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저희와 무척 친하게 지내던 전도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저 나름으로는 주일학교 교사 직분도 잘 수행했고, 저까지 포함해서 10명인 동기생들도 각자가 원하는 곳은 아니라고 해도 그럭저럭 대학의 문턱을 밟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1991년은 그러던 제가 드디어 20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어느 날 평소처럼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오다 한 여자를 봤습니다. 저는 새로운 신자 분이신가 보다 했더니 교회 소식에 밝은 동기 녀석이 전도사님의 사촌여동생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전도사님의 여동생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교회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미용학원에서 미용 기술을 배우는데 집이 섬 지역이라서 당분간 어쩔 수 없이 교회에 와서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전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친해졌을 때 그때 왜 그렇게 날 유심히 쳐다봤냐고 했더니, 참 볼품없이 생긴 사람인데, 태산을 등에 얹은 듯 자신감이 강해 보였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런 제 모습에 반했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제 역사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데 말이지요. 아무튼 그 첫 만남 이후로 저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배가 끝나면 교회 주변을 거닐었습니다. 몇 시간이고 주변을 거닐다가 벤치가 있으면 날이 저물 때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에 안 납니다만, 아무튼 미영이는 저와 이야기를 나눌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합니다.
네, 맞습니다. 전 자신감이 굉장히 높았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지금도 미지수이지만, 일례를 들자면 친구들 여러 명과 같이 있을 때 한 무리의 여자들을 보면 친구들이 저에게 가보라고 등을 떠밀곤 했습니다. 심지어 저보다 더 잘생긴 녀석도 많았고,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녀석들도 수두룩한데, 꼭 말을 붙일 때는 저를 보냈습니다. 이상하게도 얼굴이 좀 되는 여자들 앞에선 입 한 번 뻥끗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저는 시쳇말로 미스코리아가 와도 주눅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차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등을 떠밀면 냅다 가서는 3:3 즉석 미팅을 해보기도 하고, 5:5로 하루 온종일을 여기저기로 쏘다니며 놀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 만났었던 몇몇 여자들도 저보고 그런 말을 종종 할 정도였습니다.
“**씨는 자신감 빼면 시체일 것 같네요. 도대체 그 무지막지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와요?”
어쩜 그렇게도 뻔뻔하면서도 낯짝이 두꺼웠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입니다.
미영이와 만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우린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다니게 되었고, 얼마 안 가 대로변에서도 끌어안다시피 하고 다녔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그러던 우리 모습이 교회 성도님들께 발각이 되어 기어이 전도사님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전도사님은 할 수 없이 미영이에게 금족령을 내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미영이는 조금의 틈만 있어도 밖으로 뛰쳐나와 저를 만났습니다.
아마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은연중에 로미오에 빙의했고, 미영이는 자신이 줄리엣인 양 믿었던 모양입니다. 우린 마치 비극의 주인공처럼 그 끈질긴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던 저는 점점 전도사님의 압력에 견디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전 미영이와 전혀 육체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사님은 저를 볼 때마다, ‘**아, 미영이는 안 된다. 상처가 많은 아이다. 정말 잘해 줄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며 늘 엄포를 놓았고, 당시 전도사님의 사모님도 틈만 나면 미영이에게 어떻게든 저를 만나지 못하도록 꼬드기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저희가 만나는 걸 내버려 뒀다면 솔직히 그냥 교회 동기 사이로 남았을 텐데, 전도사님과 사모님의 훼방은 안 그래도 시간만 나면 붙어 있고 싶었던 우리 둘을 더 자주 만나도록, 더 몰래 만나도록 만들었습니다.
“미영아! 네가 보기엔 나 잘 생겼어?”
“아니, 넌 못생겼어. 키도 너무 작고.”
“그런데, 왜 날 좋아해? 주변에 나보다 훨씬 괜찮은 녀석들도 많잖아.”
“맞아, 너보다 훨씬 괜찮은 애들이 많아. 그런데도 난 혼자 있으면 너만 생각나.”
뭐, 이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놓고 저보고 키도 작고 못생겼다고 하면서도 저를 안 보면 못 견디겠다고 하는 미영이와 저는 점점 사이가 가까워졌습니다.
두어 달쯤 뒤 드디어 전도사님이 저에게 손을 들었습니다.
“**아! 우리 미영이와 만나는 건 좋은데, 그래도 교회 근처에서는 손잡고 다니거나 그러지 마라. 사람들이 자꾸 수군거리니까 말이야.”
드디어 우리는 미영이의 보호자였던 전도사님의 허락을 받고 공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미영이는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용 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세한 시스템을 모르겠는데, 그때만 해도 미용사(헤어디자이너)가 되려면 반드시 미용 학원에 다녀야 했고, 일정한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에 미용실에 ‘시다’로 고용되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진 탓에 '스태프'라는 멋진 말로 부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미용실 원장이나 미용학원 원장들은 이런 시다들을 종 부리듯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매일 밤 10시 가까이에 미영이를 만나면 원장과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듣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말이 에피소드이지 그건 거의 착취나 다름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전 그때 이름도 없는 시시한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시간도 비교적 많아 언제든 미영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뻔질나게 미용 학원을 드나들었던지 복도에 서성이고 있으면, ‘미영아! 밖에 니 애인 왔다. 나가 봐라.’하는 학원장의 목소리를 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게 된 시다들 중에 저한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던 여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미영이가 다니던 미용학원의 동료 수강생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여자, 현주는 틈만 보이면 저한테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