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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17. 2023

여행 후 이별 (part. 3)

백열 세 번째 글: 제 리즈 시절 이야기입니다. ^^

미영이가 고향에 간 두 달 반 동안 전 분명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애인이라는 명목으로, 현주가 우리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입니다. 미영이가 가기 전에 이미 셋이 함께 와본 적이 있었기에, 현주는 자연스럽게 올 수 있었습니다.


현주는 다소 소극적인 성격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미영이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붙임성이 너무 좋은 탓인지 부모님에게 무척 살갑게 굴었습니다. 심지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수시로 용돈도 챙겨 드렸고요. 일을 쉬는 날은 저희 집에 와서 거의 하루를 살다시피 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엄마하고 시장에 장도 보러 다녔습니다. 아마도 그때 엄마는 저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르는 현주가 퍽 마음에 드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애인, 미영이의 입지가 저희 집에서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사실은 미영이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미영이가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제가 미영이를 사귀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 앞에 나타난 현주를 엄마가 싫어할 리가 없었습니다. 싹싹한 데다 어른한테도 잘하고, 무엇보다도 저를 너무 좋아하니-물론 이건 저희 엄마가 보신 시각에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엄마로서는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미영이와 시외 통화를 할 때 현주는 제 옆에 있으면서 수화기에 귀를 갖다 댄 채 미영이와 제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가끔은 통화 중 현주가 끼어들어, 미영이에게 ‘**이는 잘 있으니 걱정 말라’라는 말을 하기도 해 미영이에게서 괜한 걱정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손 편지를 쓸 때에도 제가 무슨 내용을 편지를 쓰는지 줄곧 지켜보고 있었고, 그럴 땐 이렇게 써야 한다며, 일일이 훈수를 두기까지 했습니다.

“너하고 현주만 두고 내가 그렇게 가는 게 아니었어. 우리 둘이 통화할 때 끼어드는 현주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어.”

나중에 미영이가 다시 돌아와 어떻게 된 거냐며 저와 마주 앉은자리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이미 그때는 저도 현주와 너무 사이가 가까워져 몸을 빼내올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미영이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도 제가 미영이에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전 정말 그녀가 저를 친구의 애인으로서만 대한다고 믿었습니다. 연인의 부재를 느끼지 않게 어디까지나 남사친과 여사친의 사이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주는 저에게 같이 갈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구 인근에 있는 한 시골이었는데, 친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이라고 했습니다. 평소 현주의 말에 따르면, 술 좋아하고 입이 험하며 성격까지 괴팍한 고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만은 죽을 때까지 엄마처럼 생각하고 따르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주는 저에게 부모님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본인 입으로 얘기하지 않으니 저로선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요. 그날의 그 자리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자리였던 셈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따라갔다가 할머니에게 합격점을 받아 들고 저녁 무렵 할머니댁을 나섰습니다. 대구로 가는 마을버스 막차를 타고 가야 했거든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현주와 저는 막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만약 있었다고 해도 그 당시 제 성격으로는 가지도 않았겠지만, 주변에는 모텔 하나 없었고, 다시 할머니댁으로 돌아가기도 뭣해서 우린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 저녁 8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성서, 월배, 죽전동, 7호 광장, 반고개, 반월당, 중앙로, 칠성시장, 신천동, 동대구역, 동구청, 아양교, 동촌을 거쳐 방촌까지 무려 7시 30분 동안 우리는 걸었습니다. 그때 현주가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저를 좋아한다고, 사귀고 싶다고 말입니다. 아마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거절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현주의 할머니댁에 가자고 했을 때 따라나서는 일조차도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며칠만 시간을 줘.”

기껏 생각해 낸 대답이 그것이었습니다. 참 어리석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날은, 제가 사람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며칠 뒤 저는 현주의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속칭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었으므로, 전 미영이를 과감히 잘라냈습니다. 하루 한 번씩 하던 전화 통화도 먼저 걸지 않았고, 전화가 오면 아예 받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1주일에 한 번씩 쓰던 손편지도 끊었습니다.


며칠 후 미영이를 배웅하던 자리에 함께 있었던 미용학원 여자 동기생이 저를 보자고 했습니다. 다방에서 만나자마자 그녀는 저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현주를 사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현주가 미용학원에서 동시에 두 남자를 꼬드겨 싸움을 일어나게 했던 일을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남자들의 집에서 외박하고 온다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그 싸움이라는 것도 두 남자가 각각 현주와 관계를 가진 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녀의 말을 제가 믿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새로 사귀게 되었으니, 제가 사귀는 여자가 그렇게 막돼먹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와는 그게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들은 모두가 자취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게 가능했다고 하지만, 전 엄연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저에게 온 본론을 얘기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미영이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내내 울기만 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요즘 저와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현주와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입니다.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까, 그녀는 단 한 마디의 말만 남긴 채 찻값을 치르고는 다방을 나갔습니다.

“나도 그렇게 질 좋은 애는 아니라는 건 알아. 그래도 난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하면서 미영이처럼 착하고 순수한 친구를 본 적이 없어. 너도 알잖아? 우리 같은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그렇게 착한 미영이를 버리다니 넌 벌 받을 거야!”

저와 만났던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미영이에게 분명 말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아팠지만, 전 그럴 여력이 없었습니다. 다방 밖에선 저와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현주가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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