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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18. 2023

여행 후 이별 (part. 5)

백열 다섯 번째 글: 제 리즈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현주와 저는 고속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지금은 광역시가 되어 제가 살고 있는 대구보다도 경제적인 여건이 더 나은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인구가 채 100만 명도 안 되는,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변모하는 과정 중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도심지가 그다지 북적대지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차분하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그다지 잘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은 적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날 제 기억이 맞다면 하필 강력한 태풍이 북상 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풍의 영향 탓에 차량도 부쩍 줄었다는 말이 들렸고, 그런 상황이다 보니 저희가 갔을 때에는 약간 과장하자면 도시가 정적 상태나 다름없었습니다.


고속버스 운전기사는 울산시를 접어들면서 바닥에 물이 찰랑대고 있어서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연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울산 시외버스정류장에 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어느 정도는 바닥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현주와 저는 지금 생각해도 참 무식한 청춘이었습니다. 거기를 가서도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버스를 세 번 정도 탄 기억은 납니다만, 대체로 걸어서 이동을 했습니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현주와 어디 갔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전 어떻게든 반지를 줄 기회만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은 거의 딴 데 팔려있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게 비가 쏟아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 수 없습니다. 분명히 비를 맞으며 돌아다닌 것 같지는 않은데, 저는 그날 우산을 들고 다닌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걸 선택적 기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뚫고 현주와 저는 하염없이 걸어 다녔습니다. 우산을 썼든 안 썼든 저는 현주의 손을 꼭 잡고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당연히 우산을 썼다면 조금은 큰 우산 안에 두 명이 쏙 들어가야 하니 현주는 거의 저에게 매달리다시피 해서 걸어 다녔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소 같았다면 그렇게 손을 잡고 걸어 다니면 마치 손이 숨을 쉬기라도 하는 듯 현주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고, 길의 경사도나 상태에 따라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가를 반복하곤 했는데, 그날은 마치 나무 작대기를 잡은 듯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잡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손을 잡힌 것처럼 그런 상태로 현주는 내내 옆에서 걸었습니다. 또 하나 이상한 게 있었습니다. 분명 그날의 상태로 봤을 때 최대한 밀착해서 다니지 않으면 한쪽 어깨를 비롯해 몸의 절반은 젖을 정도로 비가 왔는데도 현주는 필요 이상으로 거리를 두고 걸었습니다.


사실은 현주에게 물어봤어야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어디 아프냐고……. 하지만 그날 결국 묻지 못했습니다. 같이 다니는 내내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고,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 하루가 다 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걷던 현주가 다리 앞에서 잠시 멈췄다 가자고 했습니다. 현주의 말로는 태화교라고 했습니다.

이게 태화강이야.”

아마도 어쩌면 버스에서 내린 후 현주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저야 울산 사람이 아니니 그게 태화교든 태화강이든 그다지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습니다만다리 난간에 목을 늘어뜨린 채 한참 아래를 쳐다봅니다위협적인 정도는 아니었지만물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현주는 자기 고향이 울산이라고 했습니다그래서 꼭 저와 마지막으로 한 번 와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문득 마지막이라는 그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현주는 그러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기억에도 없습니다만, 언젠가 제가 미영이를 만나기 위해 미용학원에 간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현주는 미용학원 원장한테 미용 기술이 늘지 않는다고 하루 종일 혼이 나서 속이 잔뜩 상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우연히 라디오를 틀었는데, 남자 가수 노래 한 곡이 끝나고 곧바로 원미연의 “이별여행”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원장이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영아밖에 니 애인 왔다나가 봐라.”

그때 복도 쪽으로 열린 창문 틈으로 제가 보였다고 합니다현주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친한 친구인 미영이의 애인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자기가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전 그럴 때마다 늘 똑같은 질문만 했습니다.

네가 다니던 미용학원에 잘생기고 멋있는 남자들 천지잖아그런데 왜 하필 내게 그런 마음이 들었어?”

넌 항상 그랬어맞아쥐뿔도 가진 것도 없고 잘난 것 하나 없는데 그 어딜 가서도 주눅이 들지 않아아마 그런 모습이 너를 처음 본 그날에도 보였던 것 같아.”

현주가 왜 원미연의 노래를 들으면 삐삐를 치겠다고 했는지 그 궁금증이 비로소 풀렸던 순간이었습니다저는 그렇다면 처음 본 그대로 만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더라고아니아니었다 보다하는 생각만 들었다는 말이야이제 우린 돌이킬 수 없어.”

미영이와 붙어 다닐 때에는 그렇게 제가 탐이 났다고 했습니다그런데 막상 자기가 가져보니자기가 본 것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TV에서 어떤 삼류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드라마 속의 여자주인공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난 누가 뭘 갖고 있으면 그걸 꼭 빼앗아야 직성이 풀려그게 얼마인지는 상관없어그게 내게 필요하든 필요 없든 그것 역시 중요하지 않아일단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무슨 수를 쓰든어떤 희생을 치르든 말이야그렇게 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나면그걸 본 원래 주인이 나가떨어지면 그때 난 그걸 버려.”

네, 맞습니다. 현주가 한 말이 딱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했던 말과 일치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합니다만, 그날로부터 무려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TV 드라마에서 현주를 다시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살아오면서 현주와의 일이 저에게 가장 충격을 준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저는 현주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제 친구가 옆에서 저를 봤다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도 자신감 있고 당당하던 그 모습은 도대체 어딜 갔냐고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의 저는 예전의 그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소심하고 나약해 빠진 볼품없는 남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도 들긴 합니다만저는 아무튼 그날 이후로 적어도 현주 앞에서는 그 어떤 자신감도 내비칠 수 없습니다.


정말 나쁜 사람인 것 같습니다그 순간에 제 머릿속에 누가 떠올랐을까요맞습니다그 비 오는 태화교 위에서 태화강을 내려다보며그것도 자기가 좋다고 하면서 멀쩡하게 잘 사귀고 있던 저를 기어이 미영이에게서 떼어놓더니 그제와 이젠 네가 싫다우리 그만 헤어지자라고 말하던 현주의 입술을 쳐다보며저는 미영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저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굳이 따지자면 제가 욕심을 낸 건 아니라고 해도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이 결국은 저에게도 상처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것을 말입니다얼마 전에 다방에 찾아왔던 미영이의 학원 친구의 말처럼 저는 벌을 받고 만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현주와 저는 비가 더 많이 와서 갇히기 전에 대구로 가자고 했습니다어쩔 수 없이 옆에 앉기는 했지만예전처럼 딱 붙어 앉지도 않았고손조차 잡지 않았습니다하긴 이별을 고한 사람에게 손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대구로 오는 내내 현주와 저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았습니다거짓말처럼 라디오에선 두세 번 원미연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때도 전 내내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애꿎은 반지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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