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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4. 2023

작가님! 저의 무지를 용서하십시오.

032: 민은숙 시인의 『분홍 감기』를 읽고……

모든 일에는 그 일에 알맞은 도구나 수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드민턴을 칠 때에는 배드민턴 라켓이, 탁구를 칠 때에는 탁구 라켓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배드민턴 경기에서 탁구 라켓을 사용하게 되면 셔틀콕이 라켓에 맞자마자 땅바닥에 떨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탁구 경기에서 배드민턴 라켓을 사용하면 공이 라켓에 맞는 순간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시집을 읽을 때에도 뭔가 알맞은 도구나 수단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소설을 읽는 눈과 시를 읽는 눈은 따로 있다.
소설을 이해하는 마음과 시를 이해하는 마음은 따로 있다.


그 때문일까요? 저는 시집을 펼쳐들 때마다 머리를 쉬이 쥐어뜯곤 합니다. 물론 이번에 읽게 된  '은후' 작가님의 『분홍 감기』도 그러했습니다. 저에겐 많이 어려운 시집이었습니다. 소중한 시집을 저에게 보내 주셨는데 이런 글 같지 리뷰로 화답하게 되어 못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놓고도 왜 아직도 시의 세계에 단 한걸음도 다가가지 못했나 싶습니다. 왜 그동안 지금껏 읽은 책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시집을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시를 효율적으로 읽지 못한다거나 시어(詩語)를 효과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한 것입니다. 그만큼 시를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은 더러 시를 읽었다고 해도 시쳇말로 음미하는 과정을 건너뛴 채 그저 읽어내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는 건 모르면 볼 수 없다는 걸, 즉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뜻합니다. 결론적으로 시의 개념과 시어의 작동 원리에 대해 무지하니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는 일반적으로 소설에 비해 읽었을 때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시가 소설처럼 일종의 스토리를 갖지 못하고 이미지만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특정 이미지가 무엇을 나타내는지도 알아야 하지만, 만약 그 행간을 읽지 못한다면 지금의 저처럼 한 권의 시집을 읽어놓고도 시쳇말로 '멘붕'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얼마 전 '은후' 작가님이라는 분의 방에 들렀다가 작가님이 시집을 출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시집을 읽고 서평을 남기겠다고 약속한 분에게 시집을 보내 드리겠다'라고 하셔서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서평을 작성하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운이 좋아 다섯 분 안에 들어가게 되어 소중한 시집을 받았습니다. 시집을 받아 들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저에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역시 시의 세계는 참 어렵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득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엔가 읽었던 소설 한 편과 이미지가 중첩되어 이번 기회에 시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문열 선생은 그의 소설 『시인』에서, 모든 일탈자가 다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은 반드시 모두가 일탈자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를 쓰신 '은후' 작가님 역시 일탈자입니다. 대체로 '일탈'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기 쉬우나, 시인의 일탈은 모종의 변화를 꾀하게 되어 있습니다. 뻔한 삶에 뻔한 언어를 비틀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조금도 평범하게 사물을 보고 싶지 않은, 그러면서도 정제된 일탈을 꿈꾸는 이가 바로 시인인 것입니다. 아마도 제 짐작이 맞다면 그런 시인의 일탈은 보다 더 희망적인 세상을 꿈꾸는 하나의 소통 통로가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마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이해할 수도 없는 언어를 늘어놓는 시인에게서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도 생산이 되고 기대도 생산이 될 수 있다면 시도 생산이 될 수 있는 것(이문열, 『시인』, 224쪽)입니다. 즉 시인은 의미를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생산해 낸 의미를 제가 제대로 포착해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만, 한 편의 시집을 읽고 이런 류의 감상이라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면, 이번에 읽은 시집에 대한 경험이 헛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해를 하든 그렇지 못하든 저는 늘 시집을 읽고 나면, 뒤의 작품 해설을 반드시 읽곤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관념적으로 표현된 시보다 이 작품 해설이 더 난해할 때가 많긴 합니다만, 적어도 제가 가진 언어로 표현은 못해내더라도 내내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민은숙 시에서 '꽃'은 존재 전환의 순간에 의해 생성된 생명의 등가물이다. 꽃은 말을 하는 대신 온몸으로 언어화한다. ☞ 「자아의 거울에 비친 존재의 현상」, 본 책, 114쪽


늘 글을 쓰고 있는 제 책상 위에 이 시집을 두겠습니다. 가끔씩 작가님의 시집을 펼쳐 보려 합니다. 몇 번 읽다 보면 지금은 이해 못 하는 꽃, 생명, 몸, 봄, 존재, 그리고 자아 등에 대한 생각들이 하나의 연결 고리를 형성하게 될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 서평은 '은후' 작가님의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시집을 무상으로 받아서 읽고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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