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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20. 2023

출근, 비, 하루

백스무 번째 글: 손이 4개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제저녁에 약간 비가 내렸습니다. 운동을 하려 가려는데 발길이 뚝, 하고 자동으로 멈춰졌습니다. 일단은 불길한 징조입니다. 만에 하나 다음 날 아침에도 비가 올 확률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모로 보나 아침에 내리는 비는 조금도 반갑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신적인 능력이 있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출퇴근 시간에 비 내리는 건 꼭 막고 싶다고 말입니다.


비가 내리는 건 자연의 이치이고, 또 어느 정도는 비가 와야 세상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간만큼은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생각을 다 할까요?


같은 논리로 출퇴근길에 만나는 비는 조금도 반갑지 않습니다. 우산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 못지않게 하루 온종일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게 무엇보다도 거추장스럽기만 합니다. 그 우산 하나로 인해 두 손 중 하나는 전혀 활용할 수 없는 상태가 다. 예를 들어 왼손으로 우산을 든다면, 비가 오는 날 대부분의 일은 오른손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이런 때에는 천 개의 손을 가졌다는 관세음보살이나 손이 4개에서 최대 8개라고 알려진 인도의 비슈누 신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굳이 8개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보기는 흉측한지 몰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4개만 있었으면 싶습니다. 하나는 우산을 쓰거나 들고 다니는 데 사용합니다. 또 하나의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받쳐 들고, 다른 하나의 손으로는 지금처럼 글을 써야 합니다. 남은 하나의 손은 혹시 모를 용도를 위해 남겨 둡니다. 주로 이 손은 캔커피 등을 마시거나 다른 물건을 집어야 하는 용도입니다. 혹은 길을 걷다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거나 악수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게 됩니다.


아침부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상상에 혼자서 멋쩍게 웃음을 지어봅니다. 하마터면 몸통만 큰 거미가 될 뻔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접이식 우산을 접어 가방에 딸린 작은 주머니에 꽂아 두었습니다. 어쨌거나 좋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출근을 완료하고 나서 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아무리 많이 내리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온종일 하늘을 신경 써야 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몇 번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봐야 합니다. 누구는 가을엔 비가 제격이고 낭만 있다고 하지만, 지금 내리는 비는 엄연히 겨울비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저 퇴근 때에도 같은 걱정을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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