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자
백 스물두 번째 글: 선생도 사람 맞습니다.
60시간 직무연수를 듣고 있는 중입니다. 영어회화에 관심이 많아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선택한 연수였는데, 이번에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연수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쩌면 좋아하는 것은 딱 그 정도 선에서 그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연수의 마지막은 필기고사입니다. 강좌마다 다르긴 한데, 대체로 100점 만점에 60점을 차지하는 시험이라 이 시험을 망치면 연수를 이수할 수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설마 뭐 그럴 일이야 있을까, 하면서도 막판 스퍼트를 위해 강좌 요약집을 펼쳐볼 마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저 요행을 바라는 건 아니나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별 수 없습니다.
시험 시작 시각이 아직 1시간 반가량 남았습니다. 집에서 서둘러 나오다 보니 컴퓨터용 사인펜을 챙겨 오지 못했습니다. 마침 시험장으로 제공된 곳이,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한 작은 대학 건물입니다. 그곳 1층에 큰 편의점이 있던 게 생각났습니다. 보아하니 그 건물은 1년 내내 직무 연수 필기고사장으로 운영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편의점에 들어가니 사인펜이 있었습니다. 캔커피 하나와 비스킷 하나를 사 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편의점이 떠나가라 떠들어댑니다. 보나 마나 저들도 선생님들입니다. 명색이 선생님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 선생님도 실수할 수 있고,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차 사고를 낼 수도 있고, 심지어 바람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도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남을 가르치는 자가 최소한의 덕목이라도 가지려면, 규칙이나 질서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자기들만 있는 것처럼 저렇게 떠드는 것은 몰상식한 것을 떠나 남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덕목도 갖추지 못했다는 걸 증명하는 셈입니다.
같은 교사로서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들이 선생님이라는 보장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꾼이 꾼을 알아보는 법입니다. 딱 보면 아는 것입니다. 일반인인 누군가가 저를 보면 딱 선생이네,라고 하듯, 우리 역시 척 보면 압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건 드러나는 법입니다. 가끔씩 집사람이 제게 그런 농담을 하곤 합니다. 당신 이마에는 '나 선생'이라고 쓰여 있다고 말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인지, 중고등학교 선생님인지까지는 조금 더 관찰해 봐야 알겠지만,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치는 원수가 아니면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 압니다.
'저 사람, 선생이군.'
누군가가 자기 욕을 하면 귀가 가렵다고 하더니 제가 저들의 흉을 보고 있는 걸 느꼈는지 자리를 뜨고 있습니다. 유리 칸막이에 가려져 몇 명이나 있었는지 몰랐는데 무려 8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번엔 안경을 끼고 지나가는 8명을 살펴봤습니다.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선생님들입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들에겐 '님'자가 아깝습니다. 저러면서 무슨 남을 가르친다고,라는 생각이 먼저 앞섭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아무리 선생도 사람이라지만, 진정 남을 가르친다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최소한의 규칙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간단한 것 하나 못 지키면서 어떻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기를 바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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