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하던 날
백 스물여덟 번째 글: 입대의 기억? 떠나간 여인의 추억?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곤 합니다. 이럴 때마다 아내는 무슨 일이냐고, 왜 매년 10월 24일만 되면 사람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냐고 하며 묻곤 합니다. '뭐, 그냥'하며 눙치고 말지만, 저는 왜 그런지 명확하게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다만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기가 머쓱해서 그러는 것뿐입니다.
29년 전 오늘은 입대하던 날이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감회가 더 남다른 것 같습니다. 이제 한 달 남짓 후면 아들놈이 입대를 하기 때문이겠습니다.
'아장거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저만큼 컸지?'
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 게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라면 돌아가신 제 부모님도 저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했지 않았을까요?
대한민국 남자 중에 입대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게 불가능한 시대라고 해도 돈이나 빽을 써서 빠질 수만 있다면 빠지고 싶은 게 군대입니다. 왜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한창 좋은 시절에 군대에 가서 그 피 같은 시간을 썩어야 하는데, 이를 누가 반길까요?
가끔씩 입대를 앞두고 걱정에 빠진 아들을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네곤 합니다.
"아빠는 26개월, 네 할아버지는 36개월이나 했다. 요즘 복무 기간이 얼마나 되냐?"
제대한 지 30년 가까이 되니 기억할 리 없습니다. 아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18개월이라고 대답합니다.
"야! 꿀이네."
자기는 이만저만 걱정이 아닌데 아빠라는 사람이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니 얄미웠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건 압니다. 과거엔 36개월인데 지금은 18개월이라, 입대에 대한 부담감도 그때와 비교해 절반으로 줄어든 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어차피 그 부담감은 각자의 몫입니다. 기간이 예전보다 짧아졌느니, 요즘은 군대에서도 휴대폰 쓰게 해 준다더라,라고 해 봤자 귀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누가 무슨 말로 위로를 하든 기분이 나아질 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냥 한마디로 가기 싫은 겁니다. 그나마 나은 건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 아들 녀석에게만 살짝 귀띔해 줬습니다. 애인이 있었는데 6개월 만에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고, 그러니 넌 다행인 줄 알라고 말입니다. 너만 알고 있으랬더니 어느새 아내가 한마디 툭 던집니다.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못 잊은 거 아냐?"
한사코 아니라고 했지만 그러고 보니 가끔 생각이 나곤 합니다. 입대하는 날, 기어이 훈련소까지 따라와 눈이 싯뻘개지도록 울었던 그녀. 오죽하면 친구들 사이엔 그런 속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부대에 들여보내며 눈물바람을 일으키면 100% 도망간다고 말입니다. 마치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시쳇말로 쿨하게 보내 준 딱 두 사람만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울고 불고 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더군요.
군 입대의 기억 탓인지 도망간 그녀에 대한 추억 탓인지 아무튼 오늘만 되면 마음은 심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녀석은 지금쯤 어떤 마음일까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기분이 나아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