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Oct 30. 2023

할로윈 파티

백 마흔일곱 번째 글: 수긍은 한 것 같긴 합니다만…….

"선생님, 우리는 할로윈 파티 안 하나요?"

오늘 아침부터 아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특성이 그렇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지어주지 않으면 들어줄 때까지 얘기를 꺼내곤 합니다. 얼른 얘기를 해야 합니다만, 일단 비교적 진도가 여유로운 과목 수업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제가 비록 4학년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들의 입장을 모두 들어본 뒤에 저의 입장을 얘기합니다. 아직은 아기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서서히 자신이 생각해 보고 결정할 나이가 되었다고 저는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아직 그러기엔 멀었다고 생각되더라도 민주적인 시민 의식을 갖춘다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듯, 어려서부터 자꾸 이런 기회에 노출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제 교육 방침이라 늘 그런 식으로 학급을 운영해 왔습니다.


드디어, 제가 생각하고 있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단 지금은 수업하고 나중에 5교시 때 얘기하자, 라며 미뤄놨기에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설명식으로 적기보다는 대략적인 대화의 상황을 재구성해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생각해 보셨어요?"

"할로윈 파티 말인가요?"

"네, 선생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좋아요! 그러면 먼저 여러분의 생각부터 들어볼까요?"

여기저기에서 손을 듭니다. 물론 손을 들지도 않고 앉아서 마구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지만, 저희 반은 처음부터 약속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발언권을 얻지 않고 얘기하는 것은 듣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선생님, 내일은 할로윈 데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할로윈 파티해요."

할로윈 파티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입니다. 이미 웬만한 것은 저만큼 아니, 저보다도 더 잘 알고 있고, 어떤 식으로 파티하는지 저는 모른다고 쳐도 맡겨 놓으면 얼마든지 거뜬하게 하고 남을 아이들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사실 그렇습니다. 물론 어떻게든 한두 시간이라도 수업을 덜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겠지만, 그 나름 그날에 맞춰 기분을 내겠다는 바람이 가히 잘못되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담임교사의 권한으로 충분히 이 정도는 누를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불만을 갖게 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설득해서 우리가 왜 할 수 없는지에 대해 납득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현명하다고 믿기 때문에 굳이 이런 대화를 갖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작년 이맘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요?"

그 얘길 꺼낼 줄 알았다며 한숨부터 쉬는 아이의 탄식이 들려옵니다. 일단은 못 들은 척합니다.

"우리 중에는 아는 사람 중에 그렇게 안타깝게 희생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불과 작년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가족에게서 아직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가 할로윈 파티를 한다면 여러분 생각에는 어떨 것 같나요? 그것도 개인 자격이 아니라 학급 전체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라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모든 일에는 바람잡이가 필요한 법입니다. 비교적 다른 친구들에 비해 언행이 조금은 더 모범이 되는 몇몇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일단 현재까지는 아이들이 왜 우리가 할로윈 파티를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대체로 수긍은 한 듯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친한 친구 몇 명이 모여 할로윈 데이 분위기를 낸다거나 가족 단위로 파티를 하는 것까지는 선생님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희 반은 항상 모든 일에 투표를 해서 다수결로 결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입니다. 충분히 수긍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이런 문제로 표결에 부치면, 그래도 파티를 하자,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몰려가기 때문입니다.

"기분을 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아직까지는 우리가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그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네요. 아쉽더라도 여러분이 이해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할로윈 파티를 하자는 아이들의 마음은 일단 누그러뜨렸습니다. 일단은 수긍하고, '그러면 뭐 하는 수 없지요'하며 받아들이는 것 같이 보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개운하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달에게 빌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