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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30. 2023

달에게 빌어

백 마흔여섯 번째 글: 소원을 빌어 봅니다.

출근하는 길에 달을 보았습니다. 참 식상한 표현, 휘영청 밝은 달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마치 저보고 자기를 보라는 듯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각에 달을 보는 게 정상인가 싶기도 합니다. 초자연적인 걸 그다지 맹신하는 것은 아니나, 이런 때에는 과학적인 요소 따위는 배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그대로를 봐야 합니다. 어쩌면 그게 낭만이고, 차라리 문학적인 것에 더 가까울 테니까요.


일전에 사람들이 슈퍼 블루문 어쩌고 저쩌고 할 때도 저는 달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경상도 상남자의 투로 달을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와? 달이 머라 카더나?'

그랬던 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뜬금없이 소원을 빌어 봅니다. 최소한 대보름은 되어야 소원을 빌지, 따위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필 이 바쁜 시간에 눈을 들어 마주친 달이라면, 그것도 힘겹게 한 주간을 시작하는 저에게 무슨 응원의 메시지라도 보내려는 듯 를 내려다보고 있는 달이라면 충분히 소원을 빌어도 되지 않을까요?


크게 욕심이 없는 편입니다. 명예욕도 물욕도, 터무니없는 욕심 따위는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가 글을 써서 유명해진다거나 돈이 많아지는 걸 싫어할 리는 없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도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다만, 현재로선 경제적인 근심에서 벗어날 기미도 없고, 앞으로도 글을 써서 유명해질 일은 없을 것 같긴 합니다.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일에 욕심을 부릴 만큼 그리 어리석지는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냥 한 마디로 주제 파악은 하고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제를 파악하지 않으면,  주제를 모르고 섣불리 행동하다 보면 돌아오는 건 결국 망신살뿐입니다. 게다가 큰 자괴감에 빠지게 되기 십상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겠습니다.


통 그런 일이 없던 가 요 며칠 소원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어떤 걸 바라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난데없이 조금만 있으면 모습을 감추고 마는 달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물론 그 정도는 압니다. 어떤 소원을 이루려면 요행을 바라지 말고 그에 맞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도 이런 경우엔 차라리 계수나무에서 절구를 찧고 있는 토끼에게라도 빌고 싶은 마음입니다.

'달에 토끼가 어디 있어? 도대체 몇 살이야?'

가끔은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것만으로도 낭만을 잃어버린 사람이 됩니다. 그래도 낭만 하나쯤은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살아가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말입니다.


아침부터 낭만 타령에, 소원을 운운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한 주간은 꽤 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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