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빌어
백 마흔여섯 번째 글: 소원을 빌어 봅니다.
출근하는 길에 달을 보았습니다. 참 식상한 표현, 휘영청 밝은 달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입니다. 마치 저보고 자기를 보라는 듯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각에 달을 보는 게 정상인가 싶기도 합니다. 초자연적인 걸 그다지 맹신하는 것은 아니나, 이런 때에는 과학적인 요소 따위는 배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그대로를 봐야 합니다. 어쩌면 그게 낭만이고, 차라리 문학적인 것에 더 가까울 테니까요.
일전에 사람들이 슈퍼 블루문 어쩌고 저쩌고 할 때도 저는 달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경상도 상남자의 투로 달을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와? 달이 머라 카더나?'
그랬던 제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뜬금없이 소원을 빌어 봅니다. 최소한 대보름은 되어야 소원을 빌지, 따위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필 이 바쁜 시간에 눈을 들어 마주친 달이라면, 그것도 힘겹게 한 주간을 시작하는 저에게 무슨 응원의 메시지라도 보내려는 듯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달이라면 충분히 소원을 빌어도 되지 않을까요?
전 크게 욕심이 없는 편입니다. 명예욕도 물욕도, 터무니없는 욕심 따위는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글을 써서 유명해진다거나 돈이 많아지는 걸 싫어할 리는 없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도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다만, 현재로선 경제적인 근심에서 벗어날 기미도 없고, 앞으로도 글을 써서 유명해질 일은 없을 것 같긴 합니다.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일에 욕심을 부릴 만큼 그리 어리석지는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냥 한 마디로 주제 파악은 하고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제를 파악하지 않으면, 제 주제를 모르고 섣불리 행동하다 보면 돌아오는 건 결국 망신살뿐입니다. 게다가 큰 자괴감에 빠지게 되기 십상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겠습니다.
통 그런 일이 없던 제가 요 며칠 소원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어떤 걸 바라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난데없이 조금만 있으면 모습을 감추고 마는 달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물론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어떤 소원을 이루려면 요행을 바라지 말고 그에 맞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도 이런 경우엔 차라리 계수나무에서 절구를 찧고 있는 토끼에게라도 빌고 싶은 마음입니다.
'달에 토끼가 어디 있어? 도대체 몇 살이야?'
가끔은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것만으로도 낭만을 잃어버린 사람이 됩니다. 그래도 낭만 하나쯤은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살아가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말입니다.
아침부터 낭만 타령에, 소원을 운운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한 주간은 꽤 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