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Nov 03. 2023

퇴근길 장관

백 쉰일곱 번째 글: 댄스 음악을 부르다 눈물이 났다.

퇴근길이었습니다. 교실 문을 닫고 바로 나오면 25분 정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약간 여유가 있을 것 같아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빽다방'에 가서 제가 가장 즐겨 마시는 카라멜 마키아또 따뜻한 걸 한 잔 시켰습니다. 보통 같았으면 '테이크 아웃' 했을 텐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매장 안에 앉아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매장은 보통 배짱이 아니면 앉아 있기가 힘든 곳입니다. 저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데, 총 세 개의 단지 중 두 번째 단지의 바로 앞에 빽다방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매장에 오는 손님의 절대다수가 아파트 단지 사람들입니다. 그 말은 곧 적지 않는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오고 간다는 뜻입니다.


저는 원래 그런 쪽으로 얼굴이 굉장히 두꺼운 편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습니다. 그냥 제가 가고 싶다고 판단하면 시쳇말로 그곳이 적진이라도 저는 뛰어드는 성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매장 안에 앉아 있으니 여기저기 아는 얼굴들이 매장에 들어오거나 혹은 매장을 지나쳐 갑니다. 더러는 눈인사도 주고받았고, 고개를 숙여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저희 반 반장 녀석이 기어이 매장 안으로 들어와 인사까지 하고 갔습니다.


글을 쓸 때 음악, 아니 노래를 듣지는 않지만, 며칠 전부터 계속 입에 뱅뱅 도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바로 소찬휘 씨의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카라멜 마키아또를 마셨습니다. 노래가 멎으면 글을 썼고, 글이 약간 막히면 또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음료를 다 마시고 밖으로 나가니 온통 아는 사람들이 천지입니다. 얼굴이 두껍다는 것은 이럴 때 장점을 발휘합니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면 되었고, 마주치지 않은 사람은 굳이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았습니다. 매장을 나와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저는 줄곧 '현명한 선택'을 부르고 또 부릅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았는데, 전 그 자리에 얼어붙을 뻔했습니다.


대략 15도 정도의 경사진 길을 눈길이 더듬어 내려갑니다. 내려가다 문득 고개를 들자마자 산봉우리 두 개 사이에 쏙 들어앉은 태양이 눈에 띕니다. 이럴 때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과연 그 어떤 말을 동원해야 저만큼 아름다운 장관을 마음에 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좀처럼 그 태양에게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10분 뒤면 버스가 도착한다는 안내판을 보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그냥 막연히 저 태양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는 버스를 놓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듯 전 내내 태양을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입으로는 신나는 댄스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때 눈에선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더니 제가 딱 그랬습니다. 그나마 저 장관을, 한 주의 업무를 끝낸 금요일 오후에 볼 수 있게 되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주사위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