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Nov 04. 2023

식물의 화법

0510

식물은 눌변에 능하다.

침묵에 가까운 발화를 한다.

너무 느리게 천천히 말하기에 언어가 없는 줄 안다.

식물의 언어는 촉각과 시각으로 들어야 들린다.

손과 눈으로 만지고 보아야 들린다.

몬스테라가 며칠간 무언가 말하려 입을 오물거린다.

두 줄기 사이에서 말아놓은 듯 꽈리를 틀더니 삼일 만에 활짝 잎을 펼친다.

잎을 꽃처럼 피우는 식물이 몬스테라처럼 유난을 떠는 경우가 또 있을까.

마지막 잎을 펼칠 때 볼을 가까이 댔다면 고함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으라찻차

활기찬 잎의 도약이다.

그가 품은 꽃말처럼 기쁜 소식을 외치는 듯하다.

겹치지 않는 다른 허공에서 다른 몸짓으로 말해야 뉴스가 됨을 식물은 잘 알고 있다.

갓 발산하는 연두는 초록으로 섣불리 달려가지 않는다.

무례하게 비교하지 않고 무모하게 경쟁하지 않는다.

말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꿈틀거릴 뿐이다.

자라거나 시들거나 흔들거린다.

식물에게는 비언어가 더 언어적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우리의 오해는 발성의 언어에 의존한 면이 크다.

식물의 화법에는 오해가 없다.

스스로 고유한 언어를 자신의 방식으로 말한다.

소통에 서투른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미묘한 식물의 감성을 전하기에 무딘 인간이 알아차리지 못해서다.

조금 숨을 죽이고 발걸음을 멈추고 얌전하게 귀 기울여야 보일 것이다.

최대한 오감을 열고 머리를 닫아야 한다.

물만 주지 말고 물어도 보아야 한다.

식물의 잎들은 입이면서 온통 귀이기 때문이다.

귀를 잡아당기지 않아도 늘 열려있으니 털어놓고 싶은 게 많은 이에게는 식물이야말로 최적의 리스너다.

답답할 때 굳이 대나무밭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집 안에 흩어져 있는 카운셀러들을 모아 그들의 수다를 애써 들어볼 참이다.


https://brunch.co.kr/@voice4u/337


매거진의 이전글 퇴근길 장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