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2주년 결혼기념일입니다. 일단 22주년이라고 적었으니, 이 단순한 숫자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상황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스물두 번째나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이라면 그다지 설렘은 없겠다, 하고 말입니다. 누가 그랬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22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상대방을 쳐다봤을 때 설렘이 느껴진다면, 혹은 그런 설렘을 상대방에게서 바라고 있다면, 당장 병원에 가 봐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정말 뭘 별 달리 해줄 것은 없었습니다. 용돈을 받아 생활하다 보니 넉넉하지 못하다는 게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어영부영하다 벌써 결혼기념일이 되고 만 게 사실입니다. 그냥 손 편지 하 정도나, 작은 선물 등으로 때우기엔 그렇더군요. 선물로 뭘 할까 고민하고 있던 중에 아내에게 받았던 반지가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제가 가지고 있어 봤자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받은 선물을 어떻게 다시 돌려줄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지라는 게 녹여서 다시 더 큰 걸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이 제일 좋은 것 같아서 며칠 전 상황을 잘 설명하고 아내에게 반지를 건넸습니다.
그러고는 막상 어제가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500,000원을 상회하는 반지를 줬으니 그걸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퇴근 시간에 집으로 가던 도중, 꽃집이 자꾸만 발길을 붙들었습니다.
선인장입니다. 이름은 들었는데 밤새 까먹어 버렸습니다. 저희 집에는 다육이 많습니다. 아내가 다육을 기르는 데 흥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부인이 다육을 기르고 있다면 남편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봐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라고 해도 갑자기 다육을 기르는 데에서 보람이나 살아가는 낙을 느끼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그 원인은 100% 남편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작 말을 이렇게 하면서도 저는 틈만 나면 다육을 선물합니다. 물론 아내의 입장에서도 어설픈 금일봉보다는 이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분명한 사실인 모양입니다. 친구 녀석이 저에게, '니 역할은 다 한 것 같으니 결혼기념일 자체를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라고 합니다. 저보다 결혼을 더 오래전에 했지만, 사는 동안 너무 스트레스가 되어 결혼기념일을 서로 챙기지 않는 것으로 합의 보았다던 친구 녀석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럴 때에는 약간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육에 대해서도 짤막한 편지에 대해서도 아내는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일단 저녁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결혼기념일은 저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입니다. 그것도 서로 사랑이 없는 부부간의 결혼기념일이라니……. 따지고 보면 누군가에게는, 혹은 두 사람 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실수를 한 날, 가장 잘못된 선택을 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을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