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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05. 2023

와인의 정량

행복한 주량의 적절한 정의란

술의 적절한 양이 있던가

어디서 어떻게 술잔을 거꾸로 엎어

절도 있게 또렷하게 그만할 수 있었던가

술이 들락거리던 입구에 물어본다

깊이 꽂히는 알코올 도수를 기억하지만

숫자에 맞춰 취기가 오르진 않지


고량주 50도에 불꽃처럼 흘러내려

쓰디쓴 기억들도 화염으로 사라진다

꼬냑 40도에 향기 취해 몽롱하면

눈 감고 추억 세며 눈물마저 행복하다

소주 두 병 나발불면 시간이 불통이니

삶에서 이틀간은 마이너스 적자라네


주량의 등성이를 굽이굽이 넘어가며

와인의 아름다움에 취해 버린 날들

여전히 정해지지 않은 미숙한 주량에

꿈인 듯 생시인 듯 세상을 더듬는다


슬픔에 꽂히면 취하지 않는 술에 

희뿌연 눈동자 비추며 원망을 쏟는다

그리움에 절절해 흘러내리는 술에

가슴 구석구석 태우며 재를 날린다

버건디 와인 두 잔에 마음 실어 보내지만

꿈길 오르는 길에 와인마저 취해가네


꿈길의 입구에서 내가 네게 전한 것은

지금과 미래를 넘은 기약 없는 약속이던가

갑작스런 막막함에 정신을 챙겨 본다

잠깐이라도 네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새벽 여명에 꿈이 깨 너를 두고 온다 해도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그것만으로도 살아낼 수 있을 거야


내가 네 옆에 서 있었던 그때가

나의 적절한 주량으로 남으면 좋겠다

나를 전해 주었던 그 경계의 몽롱함을

내 행복한 술의 한계로 기억하면 좋겠어

편하게 날아가 마주 보며 미소 짓고 

편하게 돌아와 너와의 다음을 기약하며

그런 날의 주량으로 계속 행복하고 싶다



사진 - 채색된 말린 안개꽃 20230930

#라라크루 (1-4) #라라라라이팅 주량은 행복이 정점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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