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일흔네 번째 글: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때
표가 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은 저 3주 정도 방황을 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솔직히 3주 동안 정말이지 무척이나 글을 쓰기 싫었습니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으니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더군요.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하더니 정신이 엉뚱한 데 가 있는데 뭔가에 집중한다는 게 불가능하더군요. 그래도 꾸역꾸역 하루에 2~3편 정도 글을 써오긴 했지만, 약 3주 간 쓴 제 글을 저조차도 다시 읽어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 가관이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제, 과감히 방황에 종지부를 찍으려 합니다. 뭐, 사실 제가 방황을 끝내건 말건 간에 글쓰기 자체에 대한 실력은 그다지 변함이 없을 테지만, 적어도 이제는 글쓰기에 조금은 더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 이게 저에게 맞는 것 같습니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글쓰기에 미쳐 있는 제 모습이 저에겐 가장 잘 어울릴 거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사람이 다른 데에 정신을 쏟는다는 건 참으로 무서운 일이더군요. 논리적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얼마만큼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 익히 알면서도 그놈의 감정이라는 녀석은 좀처럼 저를 놓아주지 않더군요. 지금껏 살면서 제가 느낀 것 중에 분명한 것 하나는 감정이 끝까지 달려서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나든 감정이 질주를 한 뒤에 돌아오는 것은 어김없는 허탈감과 후회뿐이었으니까요.
개인적인 감정이 어떻든 간에, 인위적으로 불필요할 만큼 애를 써서 되는 일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고, 행여 그렇게 해서 뭔가가 그럴싸하게 이루어진 것들은 얼마 못 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던 것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욕심을 내지 않아도, 과욕을 부리지 않아도 될 것은 자연적으로 되게 되어 있고, 안 될 것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나이 쉰에 천명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지천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명을 안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이며, 마흔까진 주관적 세계에 머물렀으나, 50세가 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인 성인(聖人)의 경지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나무위키, '지천명' 항목에서 발췌)고 합니다. 감히 공자 같은 성인을 저같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누구는 비슷한 나이에 천명을 알고 성인의 경지에 들어섰는데, 저는 하늘의 뜻은커녕 제 마음 하나도 다스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럽기만 합니다.
글을 쓰는 것과 천명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저 이제 다시 예전의, 글에 미쳐 있던 저로 돌아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