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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19. 2023

거짓말처럼

백 일흔다섯 번째 글: 순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잠깐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거짓말처럼 기억에서도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아니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마주친 게 아니라 맞은편에 있던 그 사람을 제가 봤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물론 그녀도 저를 봤습니다.

그녀는 안심 방면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기 위해 플랫폼에 서 있었고, 전 설화명곡 방면으로 오기 위해서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아마 한 1~2분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어디로 가지 않고 자신이 있던 그 자리에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게 이름이 뭔지 갑자기 생각은 나지 않습니다만, 그녀와 저 사이에는 두 개의 문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지하철 선로로 뛰어드는 일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무슨무슨 도어인데, 그게 있긴 했지만, 투명 유리된 부분을 통해 저는 분명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만약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아래의 글을 확인해 보시면 알 수 있겠습니다. 오늘 우연히 보게 된 그녀가 바로 아래의 글 속에 나오는 현주입니다.


무려 32년 만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아마도 이맘때 저와 헤어졌으니 3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의 인연은 기억 속에 있을 때가 그나마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현주(물론 가명입니다)를 봤었지만, 예전의 그런 설렘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뭐랄까요, 볼품없이 늙어버린 한 아줌마가 제 눈에 들어왔다고나 할까요? 아마도 현주에게도 나이만 덕지덕지 먹어버린 꾀죄죄한 한 아저씨만 눈에 들어왔을 겁니다.


모든 게 거짓말 같습니다. 이유야 어쨌건 간에 한때는 뜨겁게 사랑했던 사랑이었는데, 비록 잘못 꿰어진 단추 같은 관계였다고 해도 그녀가 저에게서 떠난 뒤로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때, 그렇게도 보고 싶던 그때에는 거짓말처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심지어 그녀의 일터 근처로 가서 그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닌데, 그럴 때조차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오늘 제 눈에 띈 겁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응, 넌?"

"나도 잘 지냈어? 결혼은 했어?"

"응, 애도 둘이나 있어."

"그랬구나.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니 다행이다."

그냥 상상 속으로만 만들어 놓은 대화지만, 아마도 옆에 있었다면 그 정도의 말은 붙이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물론 정말 그렇게 했을지는 저로서도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때마침 제가 타야 할 지하철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전 그녀가 보이는 창쪽으로 가 섰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녀를 더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뭐, 어쨌건 간에 이렇게 마주치고 나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녀 역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입 모양으로 저에게 뭐라고 말을 했습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전 그 말이 '미안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오래전에 저에게 했던 같은 말은 마음이 담기지 않았지만, 이번 말은 분명 진심을 담아 한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머릿속에 들어차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던 난제 하나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나빴던 사람은 단연 저였지만, 어쨌건 간에 저는 이제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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