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 해석
백 여든한 번째 글: 사물은 늘 변함없이 그곳에 있을 뿐.
출근길에 달을 보았습니다. 한창 경황이 없는 탓에 음력으로 몇 일이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이 꽉 차 있는 게 눈에 두드러졌습니다.
우린 이런 사진을 볼 때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달이 구름에 숨었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심지어 그 어느 누구도 이런 의미 부여에 아무런 이의 제기도 하지 않습니다.
달이 항상 같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치 그가 자유 의지를 갖고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달이 숨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서 모습을 감출 수 있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생각은 자유, 표현 역시 자유겠으나 우린 늘 이렇게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습니다. 마치 제게 전혀 마음이 없는 누군가를 혼자서 좋아했다가 혼자 관계를 정리하려는 사람처럼 스스로가 만든 틀에 갇혀 살아가는 게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뭐 이런 식이 되는 겁니다. 달이 달아나고 있다, 달이 수줍어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다,라는 표현을 하는 데 있어 우린 일말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게다가 옛날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집니다. 보름달이 뜨면 아무도 가지 않는 어떤 동네에 사는 문둥이가 민가로 내려와 아이들을 잡아먹는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그 어딘가에선 멀쩡한 사람이 늑대로 변신하는 일도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저렇게 달이 뜨고 구름에 모습이 가려 보일 듯 말 듯하게 되면 귀신과 같은 존재까지 우린 등장시키곤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둥글게 찬 달을 보며 우린 소원까지 빕니다. 마치 달에게 무슨 초자연적인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원을 빌어라,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 하며 사람의 정성이 부족해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지, 우리의 소원이 가 닿기만 한다면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긴 세상이 마치 우리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 빠져 이렇게 자의적인 해석을 해오지 않았다면 그 어떤 문학도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가 이런 착각에 사로잡히는 유일한 합리적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