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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Dec 15. 2023

늦잠과 지각

백 아흔여덟 번째 글: 늦잠은 참 달콤합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간밤에 아주 포근한 꿈을 꾸었는데 꿈을 꾸는 내내 구름 위를 걷는 듯 기분이 황홀했다고 했습니다. 꿈에서 시원하게 소변을 봤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말았더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전 그런 민망한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그 누군가가 말한 거의 비슷한 꿈을 꾼 것 같아 약간 긴장이 되었습니다. 어서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해서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6시 50분. 제가 평소에 집에서 나가는 시각이 6시 10분쯤이니 늦어도 한참 늦어 버린 것입니다. 거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모든 준비를 마무리했습니다.


집을 나설 때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동원해 봐도 가장 좋은 방법은 아내에게 데려다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때마침 휴무라 집에 있는 날이니까요. 앓느니 죽는다는 말이 스쳐 지나갑니다. 가장 현실적으로 타당하고 여러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도, 자체적으로 품고 있는 리스크가 크면 일단 접어야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역에 도착하자마자 2호선으로 환승합니다. 20분이 소요됩니다. 천금 같은 시간 어쩌고 저쩌고 해도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2호선을 타고 문양역에 내리니 8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마침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누군가가 잡아 타고 가는 바람에 8시 10분이 되어서야 택시를 탔습니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습니다. 바늘허리에 실 매어 못 쓴다고 하더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퍼붓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8시 40분, 10분 지각했습니다.


그래 봤자 1년에 서너 번도 안 되지만, 가끔 이렇게 지각을 할 때면 머릿속은 온통 백지상태가 됩니다. 머리를 아무리 굴리고 묘안을 짜낸다고 해도 지각 사태는 피할 수 없습니다.

대중교통 통근자의 비애라고 얘기할 것도 사실은 아닙니다. 다 제가 각오하고 한 일이니 당연히 불평할 일도 아니고요.


그래도 이럴 때에는 차를 운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침부터 진을 다 빼고 나니 남은 하루가 막막하게 다가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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