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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Dec 16. 2023

전망대 미션

백 아흔아홉 번째 글: 세월이 참......

현재 저에게 꽤 의미가 있는 한 분이 일전에 카카오톡으로 산(山) 사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셨습니다.

"앞산 전망대에 올라가 보십시오!"

물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해보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더군요. 일단 앞산 정도면 크게 무리를 하지 않고도 갈 수 있다는 계산이 앞섰고, 건강을 위해서도 가히 손해 볼 일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체대 태권도학과를 가겠다고 까불거리던 시절에, 훈련 삼아 제 집안을 돌아다니듯 뛰어다녔던 곳이 앞산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처음 그분의 톡을 볼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앞산이 산인가? 그 정도 오르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벼르고 벼르다 오늘 드디어 전망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얼마 걷지 않아 무지막지해 보이는 오르막길이 나타났습니다. 겨우 올라 모퉁이를 돌면 또 오르막. 곡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누군가가 이제 우리 나이는 무리하면 안 되는 나이라고 하더니, 정말이지 얼마 안 되는 길(출발점에서 앞산 전망대까지 겨우 1.5km) 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멈추고 숨을 돌려야 했습니다. 울퉁불퉁한 오르막 포장 길이 끝나나 싶더니 이번엔 나무를 박아놓은 계단이 나타납니다. 전 개인적으로 무릎이 안 좋아 계단을 무척 싫어합니다. 특히 산속에 있는 나무 계단은 시쳇말로 극혐 수준입니다.


35년 전만 해도 삼십 분이면 족히 올라갔을 그곳에 거의 1시간은 훌쩍 넘게 걸려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대구 시내 전경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시설도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키오스크로 자기 사진을 찍어서 메일에 송부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었습니다. 바람이 너무 불어 머리는 산발인 데다 춥기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콧물까지 날 것 같아 한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다행히 포즈를 잡기 전까지 5초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대구 시내 전경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사람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고 죄다 건물에 아파트뿐입니다. 간간이 오고 가는 자동차들은 그나마 손톱보다도 작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자동차보다 몇 배는 작은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우리가 서로 잘 났다고 우겨대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그런 모습이 너무 우습게 느껴졌습니다.

조금만 덜 추웠다면 느긋하게 시간을 갖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하고, 영감이 닿는 대로 한 편의 글도 쓰고 싶었지만, 농담 조금 보태어 더 있다가는 얼어버릴 것 같아 서둘러 산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올라간 산이었습니다. 하긴 한창때와 지금의 체력을 비교하는 건 무모해도 너무 무모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아주 큰 수확이 있었습니다. 산 사진을 보냈던 그분에게 나름의 미션 달성 사진을 보냈습니다. 정말 좋았던 시간인 건 틀림이 없지만, 다음에 또 오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몸살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 출처: 작성이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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