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기준
이백 여덟 번째 글: 왜 내가 모든 사람의 기준이 될까요?
벌써 10년도 더 전에 퇴임하신 교장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다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분은 아니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제가 크게 빚을 진 적이 있는 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분을 뭐라고 하건 말건 간에 적어도 저는 이러쿵저러쿵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합니다.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아내가 문득 그분 얘기를 꺼냈습니다. 혹시 연락처를 갖고 있냐고 묻더군요. 저의 무심한 성격이 제일 큰 문제겠지만, 그 사이 세 번쯤 휴대폰을 바꾸면서 연락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저 역시 그분에 대해선 늘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그때 그 교장선생님 우째 지내시는고? 퇴직했지?"
"당연하지. 퇴직하신 지 한 12년은 넘었을 것 같네."
그분과 같이 근무하던 당시의 몇 가지 일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아내가 대뜸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장선생님 키는 어느 정도 되노?"
"아마 나보다 작을 걸?"
"뭐? 그래 작다고?"
정작 본인이 키가 커서 키에 대한 감각이 무딘 건지, 아니면 이제 더는 제가 작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160cm, 아내는 171cm입니다. 결혼할 당시 제가 작다 보니 아무래도 키가 큰 여자에 조금 더 끌렸던 건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은 땅을 칠 정도로 후회합니다.
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남자라고 해서 무조건 키가 커야 하는 것도 아니고, 키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란 걸 말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살면 살수록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 참 비현실적이란 생각만 들게 했습니니다. 명색이 남자는 키가 크고 봐야 한다는 건 거의 절대적인 진리로 통했고, 심지어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는 몰라도 키가 작다는 이유로 눈에 드러나지 않는 불합리한 대우도 살아오는 동안 늘 감수해야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준이 '나'라서 영어에서 'I'는 문장의 처음에 오든 중간이나 끝에 오든 대문자로 쓴다고는 하지만, 저는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 대해 얘기할 때 그 사람의 키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제가 기준이 되고 마는 이 이상한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앞선 대화에선 오히려 제가 먼저 선수를 쳤지요. 그건 아내가 이해가 안 되면 항상 이 말을 꺼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너보다 크나, 작나?
가끔은, 아니 솔직히 매우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런 걸로 제가 세상의 어떤 일에 기준이 되는 건 전혀 반갑지 않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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