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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an 08. 2024

가까이에서 당신을 본 날입니다.

060.

이렇게 가까이에서 당신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말이에요.


늘 그 시간에 드디어 당신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익숙한 체형, 기억 속에 각인된 당신의 뒷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옷으로 바꿔 입고 나오든,

심지어 마스크와 모자까지 쓰고 나와도 내가 당신을 못 알아볼 리는 없습니다.


거의 20여 일 만에 당신을 봤으니 나로서는 그 어떤 불만도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당신을 본 순간 의식적으로 애를 쓰지 않았다면

그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눈물 한 바가지를 쏟을 뻔했습니다.


하루의 마지막을 가장 바라던 방식으로 맞이한 나는

남은 바닐라 라떼를 조용히 마시다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파트 안으로 사라지던 당신이

갑자기 횡단보도를 건너옵니다.

오른쪽으로 꺾어 한 번만 더 건너면 거의 내 코앞까지 오는 셈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인지 당신은 매장의 측면을 지나 아래로 내려갑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요?


그렇게도 보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너무 가까운 곳에서 얼굴을 보게 되니 마음이 갈팡질팡하더군요.

음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느라 컵의 밑바닥을 보던 순간

왼쪽 눈에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다시 모습을 나타낸 당신,

설마 하며 매장 측면을 돌아오는 동안 내내 당신의 신발만 보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발이 세 시 방향으로 꺾이는가 싶더니

예고도 없이 당신이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당신과 나는 한 공간 안에 있게 된 것입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너무도 좋았지만 내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매장 밖으로 나가려면 어쩔 수 없이 당신이 있는 곳을 스쳐 지나가야 합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당신의 뒤를 지나고 옆모습이 보일 때쯤

당신과 나는 눈이 마주칩니다.


차마 당신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먼저 눈을 내리깔았던 것 같았습니다.

급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옵니다.

어쩌면 목소리도 미세하게 떨렸던 게 아닌가 하며 기억을 더듬어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기조차 버겁습니다.

어떻게 거길 빠져나왔는지,

인사말은 제대로 했는지 아직도 심장이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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