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좋은 것
이백 서른한 번째 글: 좋다가 싫다가......
세상에 마냥 좋은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던 것도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라면 싫증을 내기 마련이고, 모든 사물에는 그 자체로 양면성을 띠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젯밤에 온 눈도 그렇습니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펄펄 날리는 눈을 보니 우선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아파트 앞마당에 뛰어내려 가 두 팔을 벌리고 눈을 맞고 싶었으나, 그냥 조용히 내리는 눈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맞습니다. 점점 온 세상이 하얗게 되어가는 과정이 너무도 보기 좋더군요. 마치 빨래의 묵은 얼룩이 말끔하게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일단 눈 자체가 주는 이미지가 그리 깨끗한 건 아니라고 해도, 가슴속 한편 어딘가에는 아직도 남아 있을 눈에 대한 선입견이 제 마음을 더 맑고 화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딱 여기까지만 좋았습니다. 좋았던 그 마음 위로 슬슬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출근해야 하는데, 기차가 운행 안 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또 몇 년 전 그날처럼 두 시간 넘게 연착이 되면 어쩌지, 학교로 들어가는 마을버스가 언덕이라 못 올라간다며 한 정류장 전에 하차하면 어떡하지...... 실제로 얼마 전에도 버스가 한 정류장 전에 내리라고 하는 바람에 그 미끄러운 길을 1km 남짓 걸어야 했거든요. 게다가 길이 얼어붙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도보로 이동하는 시간이 평소에 비해 족히 두 배는 더 걸릴 거라는 것도 감안해야 하고요.
얼마 오지도 않은 눈을 두고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리는 눈을 보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아마 저와 비슷한 걱정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도로 위의 눈은 죄다 녹았더군요.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리는 차들이 이미 그 눈을 물로 바꿔 놓았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인도입니다. 밤 사이에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았을 테니 어쩌면 얼어붙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일종의 동심 파괴일까요? 그렇게도 좋았던 눈이 더는 좋게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금의 제 모습에 잠시 생각에 빠져 봅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