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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an 12. 2024

쓸 게 없다면......

이백 서른네 번째 글: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세상에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을까요? 퍼도 퍼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샘 말입니다.


글을 쓸 때면 이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글감이 언제든 떠오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글감이 생각 안 나면 글을 쓸 수가 없으니까요.


제가 글감을 떠올리는 데에 쓰는 시간은 길어도 5분 남짓입니다. 그 시간을 넘기면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마음에 드는 글감이 나타날 확률도 낮고, 무엇보다도 평소에 쓰는 글과 비교했을 때 더 시원찮은 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글감이 영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일단은 글감 떠올리기 행위를 멈춥니다. 이때 제게는 몇 가지의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1. 글쓰기를 포기한다.
2. 왜 글이 써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찾아 써 본다.
3. 그때의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듯 혹은 묘사하듯 써본다.


여기에서 실질적으로 제가 1번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기어이 선택하게 된다면 글이 조금 더 쓰고 싶을 때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포기하는 것입니다. 왜 1번을 선택하는지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든지 그것이 우리에게 습관으로 고착되기 쉬운 속성을 가집니다. 즉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오늘 글을 쓰지 않으면 내일로 혹은 모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2번을 생각하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를 모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걸 안다면 글을 못 쓸 이유가 없는 셈이니까요. 그러면 일단 이런 식으로 글의 시작을 열어가면 됩니다.

글을 써볼까 싶어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도 한 잔 갖다 놓았고, 언제든 들고나갈 담배도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뭘 쓸까 잠시 떠올려 보았다. 마치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대로 미뤄둘까 하다가 오후가 된다고 해서 글이 풀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왜 글이 써지지 않을까? 일단은 내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봐야겠다.

이렇게 써놓고는 글이 써지지 않는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보는 겁니다. 물론 그 추적의 과정은 고스란히 글로 남겨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 아직 한 번도 이 방법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머릿속이 완벽한 백지장이 된 적이 없으니까요. 다만 유사시엔 이런 방법을 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긴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그나마 제가 자주 써보던 방법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이 방법은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방 안에 있다면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을 쓰면 됩니다. 점점 색이 바래저가는 벽지의 색깔, 군데군데 일어난 바닥의 장판, 베란다에 널려 있는 빨래, 치워도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책상 등에 대해서 쓰다 보면, 언제 글이 안 풀렸는지를 잊을 정도로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지하철 안에 있을 때에는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커피 전문 매장에 있을 때에는 손님들의 특징이나 외양을 바탕으로 그들의 성격이나 직업 등을 유추해서 써보면 됩니다.


글이 안 써질 때에는 글쓰기의 본연의 목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글쓰기의 목적이 좋은 글을 쓰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글쓰기의 목적은 (글)쓰기에 있습니다. 즉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입니다. 좋은 글은 차후의 일입니다. 한 편의 글을 쓸 수도 없는 형편이라면, 좋은 글을 쓰겠다는 건 과욕일 수 있습니다. 먼저 마음을 비우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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